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수하 Apr 23. 2018

신붓감 1순위 교사 며느리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원래는 교사 며느리를 원했었다.


 예비 시댁으로부터 이 말을 들었을 때, 그 무례함 앞에서 잘못된 전제 자체를 부정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저도 교사 남편 가지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던 것을 반성한다. 내가 적극적으로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은 나도 교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자 교사는 신붓감 1순위'라는 현실을 익히 알고 있었고, 실제로 말씀을 하신 당신께서 그 '여자 교사'였기 때문에 내가 작아졌다. 그 당시 내 마음을 확실하게 알고 나니 스스로가 부끄럽다.


 나는 아직도 교사들을 부러워한다. 그들의 방학이 부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사 며느리를 원한다.'는 말은 단순히 워라벨이 좋은 삶을 추구한다는 뜻이 아니다. '돈도 벌면서 내 아들 대신 일찍 퇴근해 집안일도 하고 애도 잘 키울 며느리'를 원한다는 뜻이다. (이 뜻은 뒤에 따라온 "여자가 야망을 가지면 가정이 흔들린다."라는 말로 뒷받침되었다.) 따라서 나는 그 말의 전제, 즉 '결혼하면 여자가 가정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를 부정했어야 했다. 앞으로 나는 이런 상황이 또 닥치면 "무슨 뜻이세요?"라고 질문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말의 전제가 얼마나 여성에게 폭력적인 것인지 파헤쳐 보고자 한다. 개떡같이 묻는 말에 찰떡같이 이해해서 답할 필요 없으니까.
 
 성인 두 사람이 긴 시간 같이 지내는 데에는 많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이것은 꼭 결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로 같이 살 룸메이트를 구한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결혼을 룸쉐어에 비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서로 룸메이트에게 하는 예절만큼만 지켜도 결혼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언어나 성격에서부터 정치 종교 성향은 말할 것도 없고, 금전적 혹은 직업을 포함한 환경적 조건도 중요하다. 하지만 누군가가 교사라는 직업을 딱 찍어서 룸메이트를 구한다면 이상하지 않을까? 그 이상한 일이 한국에서는 흔하게 벌어진다.


강수하 글, 그림 https://suhariver.blog.me/

매거진의 이전글 현실은 늘 상상했던 최악보단 낫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