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시즌 2
언젠가 한 소설을 읽고 생각했다. 이건 작가 자신의 이야기구나, 어떻게 이런 추잡하고 치졸한 감정까지 속속들이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을까. 창피한 줄도 모르나. 나라면 못할 짓이다 싶으면서 작가의 행태가 처절하고 천박하게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서른네 살이 되던 해, 나는 나의 일생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일가친척의 그것까지 탈탈 털어 책 한 권을 냈다. 너무 타알탈 털다 보니 심지어 내가 태어나기 전 가족의 이야기까지 나왔다. 내고 나서야 생각해보니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회사는 아직 계속 다녀야겠기에 익명성 뒤에 숨어서 한 짓이긴 하지만, 그리고 처음부터 책을 내고자 시작한 일도 아니었지만 여하튼 그렇게 일을 저질러 버렸다.
어떤 이는 책은 영원히 남으니 신중하라고 하고 어떤 이는 어차피 요즘 책 읽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솔직해도 괜찮다고 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나중에 가봐야 알겠지만 일단 나는 최선을 다해 솔직했다. 내 마음을 풀고자 쓰기 시작했기에 그랬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는 나의 존재를 세상에 확인받고 싶었다. 독립적이긴커녕 이쪽저쪽 눈치 보고 사느라 정신없는 원래의 나 말고, 언제든 대체 가능한 기계 부품 같은 강대리 말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남들이 바라는 것 말고 나만의 것을 만들어 무언가 세상에 내놓는 강수하가 되어 존재해보고 싶었다.
공대를 졸업하고 캐드만 그려봤던 나는 무언가를 내놓을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세상은 온통 기술 좋은 사람들이 내놓은 무언가로 가득 차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어르신들은 사람이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내가 배우는 것이 ‘기술’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좋은 노예가 되는 것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야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팔았다. 나의 이야기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거니까 그것이 가치롭든 그렇지 않든 간에 유일하게 내가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니까 그렇게 해 보았다. 그렇게 제목에 작가의 이름 석 자를 떡하니 박은, 무척이나 자의식 과잉스러운 나의 첫 책이 탄생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이 퍽이나 마음에 든다. 어찌 보면 조금은 처절하고 천박하지만 어차피 그렇게 고귀한 존재도 아닌 상태였기에 괜찮다. 책을 냈다고 해서 삶에 변화는 하나도 없지만 이제 나는 그냥 강대리가 아니고 나의 이야기를 하는 강수하다. 그래서 2019 한 해 동안 어떠했든 간에 나는 내가 기특하다. 그리고 이제 내 인생은 조금은 불행할망정 더 이상 재미없는 소설이 아니다.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에 나오듯이, 나는 이렇게 조금씩 나의 인생을 만들어 간다.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 냉정한 분노로 나를 지키는 이야기
“강수하는 강한 사람도 아닌 주제에,
너무나 꿋꿋하다.
강수하가 너무 독립적이지 않아도 되도록,
함께 옆에 서서 가고 싶다.”
- 서늘한여름밤(《나에게 다정한 하루》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