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 밸리의 캠핑장은 밤 10시 이후엔 모닥불 금지인 데다 5시까지 조용히 해야 하는 룰이 있다. 평범한 서울의 10시라면 누워서 예능을 보거나 폰을 보거나 하면서 취침시간까지 순삭이었겠지만 이곳에서는 다르다. 전기도 없고 데이터도 없고 무언가를 보거나 적기에 랜턴은 너무 어둡다. 폰에 넷플릭스를 잔뜩 받아오긴 했지만 그것도 자기 전에 한 개 정도나 보는 거지 뭐.
할 게 없었던 우리는 매일 밤 별을 봤다. 불을 피운 사이 해는 지고 어느새 하늘을 보면 나무들 틈 사이로 어마 무시한 별들이 보였다. 10시가 되면 빈 생수통에 물을 떠다가 모닥불을 끄고 경량 패딩을 챙겨 입은 다음 냇가를 따라 쭉 캠핑장 밖까지 나가서 별을 봤다. 물가나 초원은 나무가 빽빽한 숲 속에서 유일하게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밤늦게까지 헤드랜턴을 하나 들고 산속을 쏘다녔다. 첫날에는 주의를 들었던 곰을 만날까 좀 무서웠는데 결국 그럴싸한 곳에 가보면 우리처럼 별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꼭 한두 그룹은 있었다. 다만 별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랜턴을 끄고 가만히 있기 때문에 뒤늦게야 서로를 알아채고 깜짝 놀라곤 했다.
나는 이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없었다. 어려서 시골집에서 본 별도, 라오스에서 정전이 되는 바람에 순식간에 머리 위로 쏟아지던 별도 많았다. 아니, 많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의 별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리는 목을 90도로 꺾고 뒷골이 당기다 못해 복근까지 당기도록 별을 구경했다. 바닥에 누워볼까 생각해봤지만 매번 유일한 잠옷을 입고 있는 바람에 그러진 못했다. 우리는 그 기괴한 자세로 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별이 진짜로 반짝반짝 깜빡거리는 거구나. ‘반짝반짝 작은 별'의 작사가는 진짜 이렇게 반짝거리는 별을 봤던 걸까? 옛날엔 이런 별이 서울에서도 매일 보였겠지? 밤에 심심하면 별자리 만들 생각이 절로 났겠어. 근데 별이 너무 많으니 별자리를 찾기가 더 어려운 것 같네. 저 별자리는 마치 이미 선으로 이어진 것 같잖아!
은하수를 본 적이 없어서 눈앞에 은하수를 보고도 몰랐다. J는 어려서도 봤고 캐나다에서도 봤다며 내게 알려주었다.
“저 달무리 같은 게 말로만 듣던 밀키웨이라고? 정말 밀키 하긴 하네.”
“우리 은하가 저렇게 별들이 모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지구는 좀 바깥쪽에 있고 우리는 지금 은하의 단면을 보고 있는 거지.”
갑자기 평면 같던 하늘이 입체적으로 보였다. 내가 속한 이 고요하고도 거대한 시공간이 보였다.
별똥별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예전에 친구들과 외딴 밭 한가운데로 무작정 별을 보러 갔을 때 기회가 있었긴 했다. 그런데 친구들은 다 보는 것도 나만 보지 못했다. 열심히 고개를 치켜들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번번이 그랬다. 사람마다 잘 보는 것, 잘 찾는 것이 따로 있고 각각의 눈마다 조금씩 다른 색으로 세상을 보는 거라 생각해왔다. 그런 것처럼 내 눈은 선천적으로 별똥별을 보기에 적합하지 않은 눈인 것 아닐까. 이곳에서도 J는 몇 번이나 별똥별을 보는 사이 나는 보지 못했다. 그때 뭔가 위로 치솟는 약한 선 하나 가 보였다. 저건가? 그래, 내가 보고 있는 건 입체 우주니까 얼마든지 위로 올라갈 수도 있겠지. 빛이 좀 약할 수도 있고.
내가 본 것이 정말 별똥별일까. 아니 내가 진짜 보긴 본 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 순간은 너무 찰나였고 빛은 약했고 나는 내가 본 기억을 신뢰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별똥별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몰랐다. 마치 내가 은하수를 보고도 은하수를 몰랐듯이 별똥별을 보고도 그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때 다시 선 하나가 대각선으로 하늘을 갈랐다. 순식간이었다. 이번엔 아주 밝고 선명했다. 우리는 동시에 서로를 붙잡고 폴짝폴짝 뛰었다.
“봤어? 봤어?”
그제서야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진짜로 별똥별을 보았다. 우리가 함께였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보았기 때문에 바로 확신할 수 있었다. 사진으로는 담지도 못하는, 그저 내 상상 혹은 망상에 가까운 찰나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순간이 혼자가 아니라 우리였기 때문에 증명되고 저장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별똥별 증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비로소 별똥별을 보았다.
이쯤이면 오늘 치 별은 충전했다 싶어서 캠프 사이트로 돌아가는데 J가 물었다.
“소원 빌었어?”
“아니, 대체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소원을 빌어. 그렇지만 괜찮아. 내 퇴사 기원은 언제나 마음속 깊이 있거든. 다 이미 전달됐을 거야.”
내 대답은 진심이었다. 그 아무리 만만의 준비를 했더라도 그 찰나에 소원을 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진짜 소원이란 손을 모으고 입 밖으로 내뱉는 것 만이 다가 아니다.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똥을 쌀 때도 마음속 한구석에 뜬구름처럼 늘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 그게 바로 진짜 소원 아닐까. 별똥별이 아마 그 구름들을 다 보았을 것이고 내 소원도 잘 접수됐을 것이다.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 냉정한 분노로 나를 지키는 이야기
“강수하는 강한 사람도 아닌 주제에,
너무나 꿋꿋하다.
강수하가 너무 독립적이지 않아도 되도록,
함께 옆에 서서 가고 싶다.”
- 서늘한여름밤(《나에게 다정한 하루》 저자)
책 정보 링크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