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드는 차가웠다.
희뿌연 수술실, 간호사들은 달그락거렸다.
뚜뚜-
혈압측정기가 내 오른팔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왼쪽 팔엔 바늘이 두 개 꽂혀 있었다. 하나는 항생제, 다른 하나는 잘 모르겠다.
팔 둘 곳이 마땅치 않자 간호사가 받침대를 주었다.
옆으로 누인 허리에 바늘이 꽂혔다. 의사는 따끔할 거라고 했지만 익숙했다.
마취 용액이 바늘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 안에 무언가 점점 번지는 느낌이 들었다.
2.
잠깐 눈을 감고 떴다.
간호사들이 부산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허공에 대고 말했다.
"이제 시작하는 건가요?"
"끝났어요."
누군가 말했다.
한 시간쯤 걸린다던 수술이 이미 끝난 건가.
하체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아무 통증도 감각도 기쁨도 슬픔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철저히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섯 시간 뒤에 마취가 풀린다고 했다.
난 하릴없이 입원실에 누웠다. 관리사 아저씨가 내 다리를 들어 눕혔다.
다리를 만져 보았다. 무거운 고무 마네킹 같았다.
3.
"늦은 것도 빠른 것도 아니네요."
의사는 말했다.
요 며칠 전부터 왼쪽 종아리가 저리더니 최근 들어 갑자기 혈관이 꾸불꾸불 튀어나왔다.
나는 괜찮겠지 괜찮겠지
자꾸 미루기만 했다.
의사는 이 정도면 중증이라고 했다. 당장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의사가 진작 왔으면 쉽게 고쳤을 거라 했다. 애꿎은 수술비만 백만 원이 나갔다.
사실 일 년도 더 전부터 증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회사 생활로 바빴고 야근에 출장에 글로벌 초일류 매출 달성을 위해 고군분투할 때였다.
그 순간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충분했다.
다리가 저려도 그저 운동 부족이려니 하고 넘겼다.
4.
이제 끝나고 나니 보이는 걸까.
아니다. 그건 누구 탓이 아니다.
그저 그동안 나를 돌아보지 못한 탓이다.
내 무심함 때문에 지금 나는 벌충하는 것이다.
'하지정맥류'라는 거대한 이름으로.
통증이 몰려온다.
허리와 아랫배가 욱신거린다.
난 안간힘을 다해 몸을 돌리려 했다.
돌처럼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앞만 보던 내가 옆을 보게 되기까지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의사는 말했다.
눈으로 보이는 튀어나온 혈관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보통 의사들은 겉모습만 보고 그 부분만 주사를 놓고 말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이 더 심각하다고.
그러면서 초음파 스크린을 보여주었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깊은 뿌리 속 혈관들까지 파열된 그것,
단지 종아리만이 아닌
내 속에서 그동안 무심하게 방치돼버린
언젠가 다시 벌충해야 할 그것들을.
5.
의사는 말했다.
"늦은 것도 빠른 것도 아니네요."
무엇이?
내가 미루었던
방치했던
눈에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이 어느새 이렇게 커져버렸는데
나는 언제쯤 그것들을 벌충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