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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거 Jang Feb 03. 2017

도쿄, 48시간



지난 48시간의 도쿄.

불과 어제 오전에 비행기를 탔다니. 시간 참 빠르고도 느리다.

이제 내겐 이틀이란 시간도 꽤 길게 느껴지는구나.

전에는 고작 이틀? 이랬지만 이제는 한 시간도 너무나 풍성하고 다양하게 흐른다.


고작 한시간, 도쿄의 도심을 가로지르며 지하철로 왕복하며 흔들리는 그 순간에도

도쿄 메트로 특유의 일본 실내 냄새와 마스크 낀 사람들 속에 섞여,

어느 먼지나는 자리 모퉁이에 앉아

역시나 삐그덕대는 지하철과 함께 덜컹대는 내 모습을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흔들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이 시간을 살고 있다.

그래 그렇게 나는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도쿄에 와서 무얼 하느냐고?

예전에 왔던 중심가 - 신주쿠, 우에노, 도쿄도청, 오다이바, 아사쿠사, 롯본기 같은 유명한 곳은 하나도 가지 않고

그저 나는 구석탱이 고서점 아무도 없는 곳을 돌아다니고,

긴자의 외곽 끝자락에 위치한 어느 3평짜리 1인 서점,

커다란 문패도 없이

단 하나의 책 밖에는 두지 않는다는

그런 서점에 들러 그 한 권의 책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일본어로 되어 있어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고, 주인장 역시 뭐라뭐라 말해도 그저 웃어보였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츠타야 서점의 수만권의 책들보다, 아마존의 저 백만 천만권들의 책보다,

지금 바로 여기 놓여 있는 단 한 권의 이 책이

지금 바로 여기에서는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나는 언제부턴가 지금 바로 여기 단 한 시간이라도 내게 있는 것을 껴안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아니 이십대에는 매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고 나는 늘 다음 목표를 위해 또 다른 골을 위해 달려가기만 했다. 그러니 지금은 없고 나중에 다음에 이후에 항상 모든 것이 곧 다가올 터였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인데 내가 그냥 흘려버렸다.

그 수많은 다이아몬드 같이 철철 흐르는 시간들을,

어차피 나중에 변하니까,

어차피 나중이 더 중요하니까,

어차피 지금은 과정이니까,

어차피 내게 중요한 건 다음 목표니까,

지금을 소외시켰다.


그렇게 지나고 나니 내게 남은 것은 딱 하나.

'자꾸 무언가를 맞바꾸려 하는 습관' 뿐이었다.

그건 이거랑, 저건 그거랑 계속 맞바꾼다.

이건 부족해, 저걸 다시 한번, 그렇게 나는 하루를 이틀을 똑같이 반복해서 맞바꾸고 있었다.


무엇과?


도대체 무엇과 맞바꾼단 말인가?

모르겠다.

그게 무엇인지.


삼십대가 되고, 아니 더 이상 맞바꿀 것을 찾지 못하게 되었을 때,

맞바꾸기에 너무나 피로해졌을 때,

아마 나는 내 속에서 무언가 툭 끊겼던 것 같다.

누군가를 그것을 '퇴사'라고 부르고, '결혼'이라고 부르고,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라고, '실패의 순간', '이별', '자아의 탐색', '승진', '죽다 살아난 계기' 뭐 이런 말들로 이름붙이기도 하지만,

그냥 그냥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게다.


'계기'야 매양 있다. 생의 결정적 순간들은 늘 내게로 흘러 다가온다.

그리고 사라진다.

그냥 그냥 그렇게 된 게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을 사는 것.

그 기쁨을 알게 된 순간,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 시간들이, 나를 얼마나 살아있게 만들어 주었는지.

내가 이 거대한 인생의 흐름과 인류의 역사를 다 알진 못하지만,

그래도 나의 이 작은 우주 속에서 내가 충분히 가치를 느끼고 음미하고 향유할 만한 그것을,

지금 놓아 버리지 않고 흘려 버리지 않는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나는 아주 흡족했다.


단, 너무 오래 그것에 빠져 있어선 안된다.  

모든 건 변하니까.

고작 이틀간의 도쿄에서 별다른 것을 하지 않았지만

여기 저기 출근하고 퇴근하는 사람들 직장인들 고등학생들 어르신들을 보면서

이제 곧 나도 어디로 가야 할지를 떠올린다.


이제는 그 한권의 책을 교체할 때이다.

서울에 가져갈 한 권의 책은 무엇이 될까?


그곳에 돌아가면

이제는 변하게 된 또 다른 순간들을

껴안아야겠지?


기껍고도 슬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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