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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거 Jang Aug 23. 2016

할아버지


충청도 작은 산골 괴산. 산으로 둘러싸인 2차선 도로를 달리다 한적한 샛길로 들어간다. 어릴 적 헤엄치던 작은 개울을 건너면 으레 그렇듯 고목 하나가 마을 입구에 드리우고 있다. 그 뒤편 우리 외가댁이 보인다.


할머니는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신다. 할아버지는 방에 누워 계셨다. 아무 인기척도 없는 어두운 방에 들어가니 쾌-앵한 냄새가 난다. 오늘도 오랫동안 그렇게 계신 것 같았다.


동생과 나는 텃밭에서 고추를 딴다.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생긴 새빨간 고추가 매끈하다. 비가 와서 물기가 흥건한 잎사귀를 솎으며 푸른 고추 가지를 비튼다.

툭, 툭-!

싱그러운 자연 속 땀방울이 흥건하다. 이제 허리와 무릎이 말을 잘 안 듣는 할머니에게 이렇게 가끔 자식들이 와 일손을 거들곤 한다. 얼마전엔 이모댁이 왔다 갔다고 한다.


동생과 잡담을 하며 티비를 본다. 화질은 별로지만 그럭저럭 소일거리가 된다. 운전하느라 피곤한 아버지는 옆방에서 주무시고 어머니는 할머니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신다.

그동안 답답하셨는지 할아버지는 문 밖 낡은 흔들의자에 가만히 앉아 계신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는 늘 화난 표정이었다. 툭툭 내뱉는 말과 찡그리는 표정 외에 늘 혼자 꽁하게 계셨다.

나는 명절 때 오고가는 의례적인 인사 외에 할아버지와 거의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많이 변하셨다. 몸은 왜소하여 뼈만 더 앙상하고, 짜증스레 그을렸던 얼굴도 하얗게 먹먹해 지셨다. 거의 깜박거리지도 않는 눈은 힘없이 무언가를 응시하신다.

언젠가부터 할아버지가 아프시다는 것을 알았다. 언젠가부터 몇 달씩 병원에 입원하셨고 또 언젠가부터 염증에 곪은 두 발목을 절단하셔야 했다. 어느 날 통화를 마친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너무 아프셔서 늘 소리를 지른다고 하셨다. 의사가 한 달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말한 건, 아마 최근이었다. 우리 가족은 함께 예배를 드렸다.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치셨다.
"아버지 찬송하니까 좋지?"
"......(끄덕)"
"아버지 천국 갈 것 믿지?"

언젠가부터 말씀을 잘 못하시는 할아버지는 어머니의 물음에 무어라 그렇다는 대답을 하신 것 같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일평생을 무신론자로 사셨다.
고등학생 때, 친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의 죽음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난 장례식장에서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생각해야 했다. 내 친구 중엔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돌아가신 분도 적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아직도 껌벅이지도 않던 외할아버지의 눈이 생각난다. 그렇게 난 그 분을 하루 동안 잠깐 뵙고 서울로 돌아왔다. 앞으로 한 달 내로 다시 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새삼 인생을 생각한다.

나의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가끔씩 우리 삶이 수많은 위험과 죽음 앞에서 얼마나 태연하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

죽음과 생명. 이 가치보다 더 큰 것이 있을까. 슬프게도 너무 많다.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며칠의 시간도 할애할 용기가 나에겐 없다. 막상 시간이 지나면 후회할 것을 빤히 알면서도 정작 중요한 것을 위해 일탈하진 않는다. 생명과 인생의 본질에 관해 그저 우리는 관찰자처럼 변두리를 맴돌며, 나의 지지부진한 손톱만큼의 성공 같은 것들만 생각하며 그렇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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