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래서 애플은?"
회의 때마다 단골처럼 나오던 질문이었다.
내가 입사하던 2011년은 삼성이 한창 애플을 맹추격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당시 경영진들의 관심은 오로지 애플뿐인 것처럼 보였다. 애플이 못하는 부분을 삼성이 잘해야 했고 애플이 잘하는 부분도 삼성이 더 잘해야 했다. 제품 개발, 상품 기획, 마케팅, 영업, 고객 서비스, 파트너십 등 어떤 분야든 어떤 과제든 상관없이 담당자들은 모두 '애플 대비 차별화' 장표를 반드시 포함해야만 했다.
현재 경쟁사 대비 객관적으로 '열세'인 부분이라도 향후 이러 이러한 방법으로 차별화하겠다는 계획이라도 넣어 '우세'로 표기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졌다. 그 장표들만 보면 마치 전 분야에서 당사가 모두 이기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의 절대전략이자 마법의 주문이었다.
그러한 차별화 전략은 스마트폰 시장 초기에는 잘 먹혔던 것 같다. 빠른 추격자로서 상대방을 따라잡을 수 있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는 셈이다. 결국 삼성은 당시 아이폰에 없던 대화면과 펜 기능으로 차별화한 명작 갤럭시 노트의 출시로 애플과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처럼 차별화는 많은 경영 구루들과 기업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전략이지만, 때론 차별화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에 천착할수록 정작 소비자는 사라지고 경쟁사만 남게 될 때가 있다.
한때 갤럭시 신제품에 각종 신기능들이 마구 탑재된 적이 있었다. 광고와 언론에서 매일 노출되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거의 쓰지도 않았고 심지어 기억도 하지 못했다.
통신사의 속도 경쟁 역시 마찬가지다. SKT가 '우리가 제일 빨라' 하면, 다음 날 KT와 LGU+가 다투듯 '우리가 더 빠르지' 한다. 실제로는 다 거기서 거기 같은데 말이다.
모두가 차별화를 외칠수록 모두가 표준화가 되는 역설.
결국 차별화란 명목으로 투입되는 마케팅 비용으로 소비자의 통신비 부담만 증가할 뿐이었다.
2.
나 역시 어느새 그러한 차별화의 늪에 빠지고 있었다.
누가 말했던가.
옆집에 부자가 이사 오면 멀쩡한 우리 집도 순식간에 거지가 된다고.
난 회사 생활에 적응하고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점점 그 기대에 부흥해야 한다는 강박이 커졌다.
나는 업무에 대한 열정이나 나 자신의 꿈보다는 바로 옆 동기보다 더 잘하는 것을 더 신경썼던 것 같다. 내가 있는 세상은 그렇게나 작고 투명한 곳이었다. 모두가 신입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더라.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회의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끊임없이 신입들을 비교하고 은연중 평가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서로 의지했지만 한편 경쟁해야만 하는 '프레너미'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프레너미 (Frienemy : Friend + Enemy)
회사 안에서는 잘 나가는 엘리트들을 부러워했다. 한 선배는 나랑 나이도 비슷한데 직급도 높고 영어도 잘하고 성격도 좋았다. 주위에서 모두가 그를 칭찬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초라한 내 모습에 위축이 되었다.
회사 밖에서도 동년배의 성공하는 스타트업 대표들을 보며 자괴감에 빠졌다. 미국에서 투자를 받고 새로운 비즈모델로 혁신을 일으키는 어떤 창업가의 내공에 깊이 탄복하면서도, 도대체 나는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쉽사리 떨치지 못했다.
이렇게 취약해진 내 영혼은 남들의 좋은 평가에 우쭐하다가도 조금의 지적에도 금방 의기소침해졌다.
뉴욕타임스의 기자 출신인 케빈 루스가 월스트리스를 취재하고 쓴 '영머니(Young Money)'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골드만삭스에서 일하는 친구가 맥킨지 컨설턴트한테 '내 것이 네 것보다 크지'라고 말하면, 블랙스톤 (세계 최대 사모펀드사) 애널리스트는 골드만삭스 친구한테 '내 게 더 커'라고 하겠지. 이런 식의 지위 확인이 계속되는 거야."
(영머니, 케빈 루스)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형제 자매와 비교당한다. 학교에선 등수별로 배치된 자리에 앉으면서 내 위치를 확인한다. 대학 게시판에는 '서연고서성한...(?)'으로 시작되는 대학별 서열이 무슨 성경 구절처럼 달달 암송된다. 그렇게
서울대생은 연고대생을, 연고대생은 서강대생을, 서강대생은 또... 그렇게 밑바닥까지의 멸시의 고리는 이어진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
취업 게시판도 마찬가지다. 사시, 행시는 1등급, 투자은행, 컨설팅은 2등급, 대기업은 3등급... 이런 식으로 누군가 정한 취업 서열에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다. 나 역시 이러한 프레임에 갇혀서 내가 '그래도 중소기업보단 낫네' 하는 우월감과, '그래도 투자은행보다는 못하네' 하는 열등감 속에 빠질 때가 있었다. 사회학자 오찬호의 지적처럼, 우월감과 열등감을 오가는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영원한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는 셈이었다.
열등감을 봉합하고 우월감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는 차별화에 더욱 탐닉한다. 유명 MBA, 제2외국어, 각종 자격증, 더 좋은 회사로의 이직 등.
이러한 차별화의 늪에서 우월감만 남고 결국 자기 자신은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배트맨에게 내뱉는 명대사가 있다.
You complete me."
배트맨의 존재가 조커란 존재를 완성시킨다. 여기서 비극은, 만약 상대방이 없다면 자기 자신도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는 점이다.
3.
샤오미는 애플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으로 차별화를 한다. 삼성은 뛰어난 하드웨어 스펙으로 차별화를 한다. 내로라하는 기업들은 모두가 차별화를 잘 한다.
그렇다면 애플의 차별화는 무엇일까? 이상하게 애플은 차별화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가 '차별화'를 위해 아이폰을 만든 게 아니었듯이. (물론 잡스 사후 현재의 애플 역시 점점 평범해지고 있지만.)
에버노트 창업자인 필 리빈 역시,
최고의 전략은 경쟁하지 않는 것'
이라고 말한다. 그가 에버노트 이전 10개의 회사에서 일할 당시 그의 관심은 '우리의 적이 누구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성공한 이유도, 실패한 이유도 적과는 별로 상관이 없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내 제품, 그리고 시장의 변화였습니다."
(머니투데이, 유병률, '13.10)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쟁쟁한 대기업들을 제치고 에버노트는 현재 세계 1위에 사용자가 1억 명이 넘는다. 지금 이 글 역시 에버노트로 쓰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차별화를 그만두고 본래의 나로 존재할 때 우리는 가장 빛난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것조차 차별화라고 규정할지도 모르지만.
<참고서적>
영 머니, 케빈 루스, 이유영 역, 부키, 2015년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 개마고원,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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