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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거 Jang Jan 06. 2016

아버지의 추천사



1.

처음 퇴사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께서는 별말씀을 하지는 않으셨다.

어머니는 처음엔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시더니,

"그저 무슨 일을 하든 기도하며 준비해야 한단다."

라고 말씀하시며 묵묵히 기도해 주셨고,

장인 장모님께서는 그저 우리 사위를 믿는다며 용기 있는 선택을 격려해 주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러 간다고 해서, 이분들의 걱정과 염려마저 권리를 잃는 건 아니었다.

충분히 더 만류하고 다른 의견들을 주실 수 있었지만, 아무도 그러질 않으셨다. (감사한 건지, 아니면 죄송한 건지..)

지나고 보면 나 자신조차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할진대, 아직 젊은 나이에 흔치 않은 선택을 한 아들과 또 사위를 바라보시는  그분들의 마음은 오죽하셨을까.

그것을 또 별다른 기척 없이 묵묵히 지지하고 기다려 주시던 그 마음을 나는 언제쯤 이해하게 될는지.



2.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아버지는 그동안 좀 써 놓은 게 있으면 보여달라고 하셨다. 한창 한국어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시던 때라 그런지, 맞춤법과 전체적인 흐름 정도는 자신도 볼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좀 머쓱하기도 하고 그럴만한 수준도 되지 않아,

"나중에요."

하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가 정신없이 출판사와 작업을 하며 최종 원고를 넘기게 되었다.

끝끝내 아버지께는 사전 리뷰를 부탁드리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바빠서라기보다는 내심 부끄러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운동을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배드민턴 칠까?

탁구 치러 갈까?

공원에 나갈까?"

라고 말할 때마다, 아들은

"저 내일이 시험이에요."

"지금 피곤해요."

"나중에요."

하고 미루기만 했다.



"아빠랑 캐치볼 할까?" / "왜요?"


<이웃집 야마다군> 중



전역하고 아버지는 한동안 교회 일에 힘쓰셨다. 매일 어머니와 새벽 기도를 다니시며 취직을 놓고 기도하셨다.

어느 날 아버지는, 공부 잘해서 좋은 대기업 다니는 큰 아들이 있다며 자신의 이력서를 한 번 봐달라고 그랬는데,

아들은 회사 일로 바쁘다고 오늘도 피곤하다며,

"나중에요."

하고 휑하니 가버렸다.


나중에 퇴사하고 나니 그때 아버지의 그 막막함이 아주 조금은 - 정말이지 아주 아주 조금은 - 이해가 되면서, 난 그때 조금만 시간을 내어 봐 드리지 못한 것을 내내 후회하게 되었다.



3.

그렇게 내내 나중으로 미루기만 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책이 나오고 바로 며칠 뒤, 다음과 같은 추천사를 친구들에게 돌렸다며 자랑스레 내게 보여주셨다.  


2000년도 중반 군 제대시 동기는 월급을 모아 백만 원 통장을 가져왔는데, 아들은 책 박스를 차로 실어왔다.
제대 후 한 학기 교환학생, 컨설팅 회사 인턴, 토익 성적 등을 준비하더니 졸업 후 바로 삼성에 입사하였다.
높은 연봉과 성과금, 좋은 복지와 인프라 등 대기업의 많은 장점을 누리다가 아들은 4년 3개월 만에 퇴사하였다.
아버지로서는 아쉬움이 많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아들의 선택을 지지하였다.

아들은 퇴사 후 몇 달에 걸쳐 그동안의 회사생활을 한 권의 책으로 썼다.
'좋은 뉴스'에 가려져서 그 이면에 잘 보이지 않는 회사의 나쁜 뉴스 즉, '봐야 하는 뉴스'를 체험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주는 이 책을 읽고 아들이 대기업에 입사 후 신입으로서 힘들고 어렵게 했던 실제 업무들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의 자녀들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가거나 지겹게 억지로 견디면서 살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하여 잠시 멈춰 서서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를 생각해보게 함으로써 잠시나마 자기 자신을 한 번쯤 뒤돌아 볼 수 있도록 해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요즘 아들은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 않지만 본인이 하고 싶어 하던 일을 준비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신나고 재미있게 살고 있다고 며느리가 전해주고 있다. 자녀를 둔 부모로서 자녀에게 취업에 관한 조언을 주고 싶으면 이 책을 추천하는 것으로서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 아버지의 추천사 중



난 그걸 읽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처음 삼성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얼마나 자랑스러우셨을 부모님,

그걸 나오겠다고 했을 때 얼마나 아쉬움이 크셨을까.

그러면서도 혹여나 자식이 부담을 가질랴, 아무 내색도 않고 묵묵히 기도를 더 많이 하시며 맘 졸이셨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퇴사를 좋은 말로 추억하고 글로 묘사하더라도, 난 여전히 무익한 종이며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 앞에서는 한 없이 부족하고 죄송스런 자식인 것 같다.


아버지의 추천사는 단지 한 권의 책을 추천한 게 아니라, 아들의 인생을 자긍해 주셨다.

나 역시 언젠가는 그런 아버지의 추천사에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의 자긍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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