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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거 Jang Apr 01. 2016

어느 부사장과의 대화



1.

제대한 뒤부터 나의 로망은 컨설팅이었다. 글로벌 경영 전략 컨설팅 펌(Firm).

수많은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무작위로 이메일을 보냈고 두어 군데에서 RA(Research Assistant)로 일할 수 있었다.

명문대 컨설팅 학회와 컨설팅 인턴을 거쳐 학사 졸업 후 연봉 5천의 외국계 컨설팅펌 주니어로 입사하고, 이후 글로벌 Top 10 MBA에 진학하는 것. 이것이 당시 취업게시판에서 인정되는 경영학과로서 갈 수 있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 중 하나였다.

4학년 1학기를 마치자 나는 온갖 스펙들을 긁어모아 하반기 컨설팅 펌 공채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전부 불합격이었다.



삼성에 입사한 뒤 3년 차가 되자 다시 컨설팅에 대한 미련이 생겼다. 마침 내가 과거에 인턴으로 일했던 컨설팅 회사의 설명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면접에 부담 가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좋은 질문을 던지는 연습만 잘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어요."

졸업생 선배인 현직 매니저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나는 마치 어떤 운명인 듯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 날로 나는 다시 플랜맨이 되었다. 하반기 지원을 목표로 각종 액션 아이템, 만날 사람들, 소요 비용 등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웠다. 컨설팅 면접 학원과 모의 인터뷰 과외만 해도 비용이 꽤 들었다. 그 외에 이력서 첨삭에 영문 교정, 케이스 스터디와 각종 카페 후기들 등 취업할 때보다 더 많은 준비를 한 것 같다.  

모의 면접을 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점점 나는 내 실력의 부족함을 느꼈다. 매번 더 좋은 학교와 더 좋은 출신의 수많은 경쟁자들이 이번 하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로지 일차원적인 농업적 근면성만이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럴수록 나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이력서와 단기적인 면접 스킬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2.

드디어 몇몇 회사들의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은 총 6차까지 진행되었다. 1차 매니저부터 6차 사장까지 차수별로 면접관의 직급이 올라갔다.


첫 면접에서 매니저가 물었다.

"왜 컨설팅을 하려고 하죠?"


난 왜 컨설팅을 하고 싶었을까? 그것이 엘리트 코스이기 때문에. 이게 가장 정확한 답인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대부분 현직 컨설턴트들 역시 컨설팅 회사의 브랜드가 향후 커리어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점과, 짧은 시간에 다양한 산업에 대한 밀도 있는 분석 역량을 기를 수 있다는 점 등의 이유로 컨설팅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런 답변은 너무 흔했다. 그렇다고 어떤 뾰족한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저의 장기적인 비전은 사회적 혁신을 통해 대안적 자본주의의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삼성에서 먼저 현업 비즈니스의 생리를 파악하고 이후 컨설팅에서 다양한 산업을 배우며 세상을 넓고 깊게 조명하며..."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로 중언부언했다. 대답이 곁가지로 흐를수록 더 많은 곁가지들이 늘어났다. 어떻게든 진심만은 전달해야만 했기에 나는 아등바등 속이 탔다.


"왜 우리 회사를 선택한 거죠?"

"이 회사만의 철학과 가치가 저와 잘 부합하고..."

"왜 당신을 뽑아야 하죠?"

"저의 뛰어난 실력과 다양한 경험 및 균형적 시각으로..."


질문은 계속되었다.

단순하지만 어려운 질문들.

면접관 본인도 명쾌하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우리는 마치 모든 걸 다 아는 고수처럼 유려하게 내뱉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 역시 말하면서도 백 프로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

'왜 이걸 하고 싶은 걸까?'



하고 싶은 게 명확한 사람들이 있다.

어릴 때부터 그 목표를 위해 내 안의 열정을 불사르며 스스로 타오르는 태양과 같은 사람들.

그러나 나는 달빛과 같은 사람이었다. 주위의 인정이 없다면 스스로 빛날 수 없는 사람.

세상이 원하는 것을 나의 목표로 설정하며 나는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는데. 그것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3.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최종을 앞둔 부사장 면접까지 오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왔던 비슷한 것과 비슷한 대화들이 오고 갔다. 짙은 눈썹에 말수가 적어 보이는 부사장님이 물었다.


"본인의 꿈은 무엇인가요?"


나는 또다시 내 비전을 말하며 같은 말들을 되풀이했다.

"여기서 일한 뒤에는 어떤 계획이 있죠?"


보통 컨설팅 업계에서 주니어 급은 2년 정도 다니다가 MBA를 가거나 이직을 하는 것이 관례처럼 여겨졌다. 학원에서 알려준 모범답안 역시 글로벌 Top MBA에 진학한 뒤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전 면접에서 그랬듯 똑같이 말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회사 지원으로 MBA를 가고 다시 돌아온 뒤 몇 년 더 일하면서 사회적 기업 분야 쪽으로 알아보겠다고.


그러자 부사장님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저는 방금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이게 왠 날벼락인가?

지금까지 술술 넘어간 나의 모범답안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나는 침이 바짝 말랐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반대했지만, 이번 면접은 내가 필요해서 보자고 했습니다.

사회적 혁신에 대한 가치를 가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답을 들어보니 이런저런 핑계로 자기 치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사회적 기업을 하는데 꼭 MBA가 필요할까요? 제가 볼 땐, 본인 정도 상황이면 지금이라도 당장 할 수 있습니다.   


컨설팅 역시 꼭 MBA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이 분야 전문가가 되려면 자존심을 다 버리고 미치도록 일을 해 내공을 쌓을 생각을 해야지, 지금 계획은 치기 어린 허풍처럼 느껴지는군요.


말로는 사회 혁신이 비전이라면서, 현실은 자기 치장만 하는 것 같아 실망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바짝 정신이 들었다. 실로 엄준하면서도 정확한 지적이었다.

나는 부사장님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내게 컨설팅이란 로망은 결국 자기 치장에 다름 아니었던가.


그러면서 부사장님은 본인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본인 역시 처음 대기업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고, 이후 중소기업과 여러 컨설팅 회사에서 숱한 난관을 겪으며 어떻게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본인이 느꼈던 남모를 실패와 고충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까지의 여정들을 진심 어린 목소리로 차분히 일러 주셨다.

그리고 만약 합격한다면 죽을 각오로 일해 줄 것을 마지막으로 당부하셨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니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한동안 빌딩 주변을 맴돌았다.

"말로는 사회 혁신이 비전이라면서, 현실은 자기 치장만 하는 것 같아 실망입니다."


부사장님의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결국 면접은 불합격했다.

그러나 그 부사장님과의 대화는 이후 내 인생에서 중요한 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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