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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거 Jang May 11. 2016

삶의 파문(波紋)


1.

매일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린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태연해 보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울적해지고,

사람들 앞에서 웃으며 우쭐하다가도 다음 날은 아무도 만나기 싫어질 때가 있다.


삼성을 다닐 때는 어느새 미지근해진 나 자신이 싫어져서, 뜨겁든지 차갑든지 뭐라도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냉탕과 온탕만 반복하느라 뜨거운 건지 차가운 건지 알 수가 없다.   

하루하루가 기나긴 엿가락처럼 축 늘어지다가도, 지나고 보면 새삼 시간이 부족함을 느낀다.

그만큼 알차고 충만하게 시분초의 한 톨까지도 바득바득 긁어서 꽉꽉 채우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쩌면 그저 물리적으로 긴 시간만큼의 노동과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어느새 범벅이 되어버려 훅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다 여유로운 삶을 찾아 퇴사를 했는데, 어느새 삼성 시절보다 두 배는 더 일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비록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다크서클은 점점 미끄러지고 있지만, 새로운 경험들과 인풋들 속에서 청량감을 느낄 때가 있다.

퇴사 후 일 년을 돌아보며 거창한 경험과 큰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꾸며 이야기하다가도, 아직도 왜 이러고 골골대고 있나 하는 중압감이 다시 나를 짓누르기도 한다.


카카오 브런치 글 중 추석 때 올린 '인간의 시간, 회사의 시간'은 10만 건의 조회수와 2만 건의 공유수를 기록했지만,

https://brunch.co.kr/@suhanjang/27


카카오 스토리 펀딩에서 연말에 올린 '이번 주 야근 CCC야, 저렇게 살 수 있는 건가'는 모금액 미달로 폐지되었다.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2876


똑같은 야근 문화 이야기인데,

전자는 "너무나 공감된다"는 선플이 60개,

후자는 "대기업이라 배부른 소리한다"는 악플이 200개가 달리기도 한다.

글 잘 봤다는 호평에 한껏 추켜세워지다가도, 한 두개의 혹평에 금세 의기소침해진다.

여전히 '퇴사'라는 키워드는 나에게 적잖은 부담이 된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 전도서 3장 1~8절


그러나 이 모든 번민에도 불구하고, 다시 퍼뜩 정신을 차리는 순간이 있다.


바로, 사람들을 만날 때.


지난 2주간 3번의 퇴사미팅회를 통해 20여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대기업, 외국계, 중소기업, 주니어, 시니어, 2년 차부터 10년 차까지. 다양한 분야와 다양한 경력,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


퇴사를 하든 하지 않든, 그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퇴사'라는 단어는 그저 하나의 상징일 뿐.

중요한 것은 퇴사도 입사도 하지 못하는 이 진퇴양난의 시대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일과 삶을 꿈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한 줄기 작은 열망들. 그 에너지가 7평짜리 회의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에너지를 이대로 결코 휘발시켜 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2.

어쩌면 우리의 인생이란 연극의 시작과 끝을 모르고 중간에 들어온 관객과도 같을지도 모른다.


한창 연극을 보다가 옆 사람에게 물었다.

"지금 저기서 왜 웃는 건가요?"

"그냥 보다 보면 알아요."


그렇게 옆사람이 웃으면 따라 웃고, 옆사람이 울면 따라 울며 나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수능을 치고 대학을 다니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연극의 처음과 끝을 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창업자도 후계자도, 충성스러운 임원도 패기 넘치는 신입사원도 이 연극의 처음과 끝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퇴사하고 창업, 100억 원 자수성가'라는 기사에 너도 나도 퇴사하고 우르르 창업 전선에 뛰어든다.

'창업 후 3년 이내 실패율 90%에 육박'이라는 기사에 또 너도 나도 퇴사자들에게 경고한다.

그냥 회사를 다니고 있으면, "너는 정체하고 있다, 너만의 꿈을 찾아 떠나라" 하고 부추기고,

퇴사하고 허덕이고 있으면, "왜 퇴사했냐, 그냥 회사에 있지" 라고 핀잔을 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대.

모두가 연극의 처음과 끝을 모르니, 그저 지금 순간만을 인지하고 순간만을 판단한다.

이러한 즉시성의 시대에서는 대안 없는 공허한 힐난만이 허공으로 휘발된다.


우리는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돌진하는 누군가의 거대한 기계를 돌리는 소소한 톱니바퀴로 머물 위험에 처해 있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노동 시간인 10만 시간을 30년이라는 기간 안에 꾸역꾸역 채우고 있다.
거대한 은하계의 신비는 풀어내면서도 정작 가까이에 있는 내 가족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일에서의 성공이 삶에서의 실패를 의미하는 시대인 것이다.
- 텅 빈 레인코트, 찰스 핸디




3.

이러한 미완의 연극의 기원은 어디에서부터 일까?


굳이 톱아보자면, <학교>가 아닐까 싶다.

18세기 영국 산업화 시대의 공장식 학교 제도가 일본을 거쳐 오늘날 우리나라에 도입되었고, 그것은 다수의 노동자 계층 통제를 위한 주입식 시스템이었다. 기초적인 산수와 국어를 배우고 SKY만을 바라보며 10대를 보내게 만드는 것. 모든 학생이 모든 단계를 똑같이 가야 하는 하향평준화의 시대에서 우리는 오로지 SKY, 다르게 말하면 '고스펙 안정성'이라는 키워드만을 학습하게끔 배워 왔다.

한국 아이들은 학교에서부터 기존 제도에서 낙오되면 끝이라는 생각에, 소위 말하는 '남들 다 하는 안정적인 목표'만을 추구하게끔 배우게 되었다. 그것이 좌절될 경우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포기, 체념, 냉소주의의 패배감으로 번지는 과정을 겪었다.

시험 문제는 잘 풀지만, 현실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초합리적 바보.

학교에서의 이러한 경험은 직장의 경험을 통해 악순환되고 재강화된다. 강준만은 이런 현상을 '학습화된 무기력의 세대'라고 지칭하였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강준만


이처럼 우리나라 학교에서의 교육은 '안정성'이라는 키워드만을 지속 주입하는 과정이었다.

초중고 12년 내내 '안정성'만을 중시하는 프레임에서는, 소위 말하는 '승자'는 스펙 경쟁의 승리를 바탕으로 '정규직'이 되지만, 어느새 점점 미래에 저당 잡혀 미뤄지는 삶을 산다.

'패자'는 '비정규직'이라는 열등감이 주입되어 이곳저곳을 오가는 불안한 히치하이킹을 한다.

그리고 이 프레임 안에서 '승자'도 '패자'도 거부하는 이들은 'NEET 족'이 되어 달관적 포기 세대로 불려지는 것이다.


'주입식 안정성'만을 추구하는 학교 프레임을 거부하고 싶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NEET족이든 공통된 한 가지 슬픈 사실은, 이 모든 행태들이 결국 '안정성' 추구라는 프레임 안에서 나온 '반작용'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무엇이 더 좋고 옳고 낫다고 말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은 없겠지만, 지금의 우리네 청춘들은 분명 어릴 적 학교에서부터 이러한 미완성 연극에 징집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연극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의로 타의로 극장을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무의식 중에 나는 이러한 프레임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4.

지난 퇴사미팅회에서 만난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은 화두를 던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게 정말로 가능할까요?"


그것은,

현재의 현실에서 그런 이상주의가 가능하냐는 질문도,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질문도 아니었다.

그저 이런 화두를 같이 고민해 볼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그냥 한 번쯤은 소리 내어 내뱉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정말 가능한 일일까?


UN 행복지수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덴마크의 행복의 비결을 취재하기 위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오연호 저자는 약 300명의 덴마크인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들에게

"요즘 걱정거리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사람들은 한참을 생각하면서 딱히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당신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길에서 만난 40년 차 웨이터는 덴마크에는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말한다. 22년 차 택시 기사는 열쇠 수리공인 자신의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한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연호


"행복한지 아닌지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나요?"

"아침에 출근할 때 내 발걸음이 가벼운지, 회사로 향하는 마음이 즐거운지가 척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이 회사에 출근하기 싫다고 느낄 때가 1년에 아주 아주 적게 있습니다. 하하 별종 같나요?"

어느 회사에 다니는 직원의 대답이라고 한다.  


이러한 비결은 바로 덴마크의 '교육'이라고 한다.

덴마크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것은 여러 능력 중의 하나로 여길뿐 교사들은 여러 아이들의 다양한 장점을 끌어내고 칭찬한다고 한다.

덴마크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삶을 위한 학교'인데 일종의 자아 및 진로 탐색 학교라고 볼 수 있다. '삶을 위한 학교'는 만 17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으며, 주된 목적은 기술/지식 습득이 아니라 수업과 토론, 실습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신의 길을 찾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삶을 위한 학교, 시미즈 미츠루, 김경인 역



덴마크 사람들은 이 학교를 고등학교 진학 전에 1년간 다니고, 나중에 대학에 가서도 다시 다닌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언제든지 휴직하고 다시 이 학교를 다닐 수가 있다.

인생의 매 중요한 순간마다 자아를 다시 발견하고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하고 싶은 것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그것을 청소년, 대학, 직장인 등 어느 시기에서든 자유롭고 충분하게 시도할 수 있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어찌 보면, 우리 시대에서 결핍되어 있는 <학교>의 진짜 역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5.

파문(波紋).

삶의 파문이 이는 순간이 있다.

작은 돌 하나지만, 커다란 호수를 움직이는.





퇴사미팅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이제는 파문을 마주할 때.

'삶의 파문'을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1.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2. 지금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직면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3. 새로운 용기를 위해 지금 필요한 행동은 무엇인가?


우리들은 그 어느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모두가 두 눈이 말똥말똥해져서, 마치 이런 파문을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다는 듯이,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은 에너지들을 조심스래 서로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 질문들에 대해 나는 조용히 자문해 보았다.

언젠간 답을 찾아갈 수 있을까.

아마 나 혼자서는 많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실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기존엔 없던 새로운 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퇴사학교>와 같은.








<참고서적>

성경, 전도서

텅빈 레인코트, 찰스 핸디, 강혜정 역, 21세기 북스, 2009년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걸까,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4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찬호, 오마이북, 2014년

삶을 위한 학교, 시미즈 미츠루, 김경인 외 역, 녹생평론사, 2014년







삶의 여러 실험들 중 하나로, <퇴사학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만들어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그리고 가감없는 피드백 부탁 드립니다. ^^


http://t-school.kr/




단행본 <퇴사학교>도 출간되었습니다. 

위에 언급된 답을 찾기 위한 보다 자세하고 다양한 내용을 위해 단행본 구입을 부탁드립니다^^


(좋은 글 한 편을 위해서 작가에게는 최소 10시간 이상의 연구와 습작, 퇴고 작업이 필요합니다. 

양질의 콘텐츠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는 생태계를 위해 함께해 주세요. 

독자들에게 더 좋은 글과 작품으로 보답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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