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편력(遍歷)

by 티거 Jang


1.

길을 걷다 한 꼬마가 차에 치일 뻔한 것을 보았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아이는 크게 놀랐는지 길바닥에 엎어져 엉엉 울고 있었다. 황급히 엄마가 달려와 껴안았다. 주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꼬마는 무에 그리 서러운 듯 연신 꺼이꺼이 울었다. 그 아이를 보니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다섯 살 때쯤이었을까.

선잠에서 깨어나니 초저녁이었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창밖으로 저녁 바람이 들이차 커튼만 홀로 펄럭이고 있었다. 밖은 그저 캄캄해서 사람도 동물도 보이지 않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생경했다.

"어엄- 마아-!"

베란다로 나가 나는 울면서 소리쳤다. 그렇게 몇 번이고 엄마를 불러 보다, 난 문득 서럽게 외로워졌다.


예전에는 완벽한 순간을 여러 번 맛보았다.
그 순간 때문에 우리가 긴 생을 견딜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을.
놀이 새빨갛게 타는 내 방의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운 일이 있다.
너무나 광경이 아름다워서였다.
- 전혜린, 목마른 계절


고3이었던 전혜린은 단지 노을이 아름다워 울었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종종 있었다. 하굣길 서강대교 사이로 늘어진 노을을 보며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던 순간. 겨울방학 탐구생활 표지의 눈 덮인 계곡이 그렇게도 쓸쓸해 보였고, 해발 1,200미터 군부대에서 발아래 펼쳐지는 구름을 볼 때 아름다움과 동시에 나는 완벽하게 외로워졌다.





2.

군대에서 흔히 그렇듯 휴가 때마다 경쟁적으로 약속을 잡았다. 혹여 내가 잊혀질까 단 며칠의 일정을 쪼개 점심, 저녁, 주말 내내 풀타임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그렇게 가장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와 현관문을 열 때의 뻥 뚫린 허전함.


오히려 혼자 있을 때 더 외롭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광화문 서점에서 책을 보며 낙엽이 떨어지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을 때의 낯선 충만감.

그 시절 나를 위로해준 책 중 하나는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었다.


이제 나는 이 인간 사회에서 고독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중략)
나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과는 이제부터 아무 인연이 없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는 이웃도 친구도 형제도 없다. 나는 현재 지구 상에 살고 있지만 우주 속의 어느 별에서 이 유성 위에 찾아온 나그네와 같다.
- 장 자크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내가 하루에도 수없이 되뇌었던 말. 어떤 프랑스 철학자의 고백이 300년 뒤 한 청년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루소는 만년에 어떤 이유였는지 완연한 고독의 길을 택했다. 그는 스스로를 벗 삼아 자신만을 탐구하며 여생을 보냈는데 '고백록', '대화' 등 자기고백 문학의 선구자적 작품들이 이때 집필되었다.



어린 시절처럼 고독하십시오. 어른들이 우왕좌왕하며 아이들 눈에는 중요하게 보이는 사물을 무심코 지나쳤을 때, 아이들은 엄청난 고독을 느낍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고독의 시간 없이는 위대한 철학서나 예술은 불가능하다고 릴케는 말한다.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도 고독한 농촌생활이 창조성을 더욱 자극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처럼 고독이란 외로움을 직면할 때 얻게 되는 선물과도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에게 외로움이 올 때 가장 쉬운 선택은 회피하는 것이다.

사람의 전성기에는 값싼 연애나 사교모임으로 외로움을 숨긴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그 대체재로 자본주의 상품 - 쇼핑, 오락, 연예인 등 - 을 소비하고 스마트폰에 중독됨으로써 외로움을 해소하려 한다.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우리를 더 기분 좋게 해주는 '심리적 마비' 상태를 계속 찾아가는 것이다.


외로움의 뿌리는 매우 깊기 때문에 낙관적인 선전, 사랑을 대체하는 이미지들이나 사교 모임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중략)
우리가 살아가다 외로움에 못 이겨 자신으로부터 떠나서 다른 이에게 기댄다면 결국 우리가 맺는 관계란 서로를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며 우리의 포옹으로 상대방을 옥죄는 관계가 돼 버립니다. 친구나 연인도, 남편이나 아내도, 공동체나 교제권도 하나 됨과 일체감에 대한 우리의 깊디깊은 갈망을 잠재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외로움에 지친 나머지, 함께라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함께 하고자 하는 한, 우리는 채워지지 않고 실제적이지도 않은 하나됨과 내적인 평안과 끊어지지 않는 교제를 경험하고자 하는 갈망을 품은 채 서로를 비난하게 됩니다.

친구 하나가 언젠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우는 것을 배우는 것과 철야하는 것을 배우는 것과 새벽을 기다리는 것을 배우는 것, 아마도 이것이 인간적이 된다는 것의 의미일걸세."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고 은근히 바라면서 사람이나 책, 사건, 경험, 프로젝트와 계획에 끊임없이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또 내면의 감수성을 민감하게 만들기보다는 우리를 더 기분 좋게 해주는 '심리적 마비' 상태를 계속 찾아갑니다.

- 헨리 나우웬, 영적 발돋움



3.

안해와 아기가 옆에 있되 멀리 친구를 생각하는 것도 인생의 외로움이요, 오래 그리던 친구를 만났으되 그 친구가 도리어 귀찮음도 인생의 외로움일 것이다
- 이태준, 무서록


문득 옆에서 잠든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며 잠 못 들던 이태준의 고백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외로울 때가 있다. 그것은 그 사람만으로는 부족하다거나 섭섭한 게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생의 모든 게 충족되어 있지만 충만하지는 못한. 말하자면 자아의 근원적 외로움 같은 게다.


인류의 첫 번째 고뇌가 바로 이러한 외로움이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시고 가장 먼저 든 걱정은 외로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반려자인 여자로 하여금 남자와 결합하여 하나 됨을 이룸으로써 외로움이 해결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로 인류가 받은 벌 또한 절대자와의 단절감, 즉 외로움인 것이다.


우리는 함께이기만 하면 외로움이 온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인간은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외로운 존재이기에 서로를 보듬고 함께 영원을 갈망하게 되는 건 아닐까.


지난 서른 해를 넘기는 동안 외로워하는 법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어릴 때는 작은 관계 하나에도 어리숙하게 아파했다. 2년마다 이사를 다니며 정들었던 사람들의 부재로 지독히도 외로워했다.

청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로 이사가던 날. 이사가기 몇 달 전부터 나는 너무나 시무룩해져서 매일 밤 괴로워했다. 그렇게 마치 꿈같던 사람들과의 마지막 작별을 건네고 이사를 갔다. 매일 그리워하며 반드시 다시 보리라는 소망으로 기다리던 나는 몇 달 뒤 그 사람들을 보러 갔다.


처음엔 무던히도 반가웠지만, 며칠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헤어지는 날 깨달았다.

우린 이미 예전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나는 집에 돌아가는 고속버스 뒷자리에 앉아 텅 빈 마음을 두고 엉엉 울어야만 했다. 그때처럼 순수하게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외로움을 실감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지금 나는 다시 한번 그런 외로움이 그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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