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마 기자의 꿈
MBC 파업이 드디어 끝났다.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이지만 우리가 그토록 외쳤던 MBC 김장겸 사장이 해임됐다. 나는 김장겸 해임 소식을 들으면서 이용마 기자를 떠올렸다. 방송문화진흥회 김원배 이사가 사표를 냈다는 소식에 너무 좋아서 펑펑 울었다는 MBC 해직 기자 이용마, 그는 2012년 파업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해직됐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노조를 탈퇴하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끝까지 노조에 남았다는 이용마 기자가 책을 냈다. 그의 책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를 손에 든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쉽게 놓지 못했다. 예약 판매한다는 책을 미리 구매해놓고 기다려 받은 책인데 생각보다 잘 읽히지 않았다. 이 책이 그의 마지막 책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싸워온 이용마 기자는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아 투병 중이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그는 자신의 두 아들에게 이야기를 남겨야 했다고 생각했단다. 두 아들이 스무 살이 됐을 때 인생의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그 순간에 자신이 없을지도 몰라서 아버지를 대신할 글을 썼다고 한다. 두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한 프롤로그 첫 문장부터 자꾸만 목이 멨다.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정리이자, 우리가 살아온 세상, 우리가 바꾸어야 할 세상에 대한 진솔한 기록”이라는 그의 말처럼 책에는 가난한 어린 시절, 정의로운 사회를 꿈꾼 대학시절, 아내와의 만남과 두 아들을 얻기까지의 어려움, MBC 기자 생활을 하면서 들여다본 우리 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용마 기자는 권력이나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는 기자였다. 언론이 절대 건드리려 하지 않는 ‘삼성’을 비판하는 기자였다. 그는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취재했지만 번번이 보도가 막히거나 했던 조직 내부의 문제와 삼성의 언론 관리, 그리고 삼성이 가진 권력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고발한다. 책에는 삼성이 광고를 주는 조건으로 이용마 기자를 빼 달라고 요구해 이용마 기자가 취재한 보도 내용을 다른 기자가 대신 읽었다는 에피소드도 나온다. 기자 생활을 통해 얻은 우리 언론의 허상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많다. 전쟁터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호텔방에서 해외 언론을 보며 아프간 전쟁을 취재해야 했던 경험, 방송 앵커가 갖는 이미지와 현실의 차이 등 언론 생태계도 털어놓는다. 그리고 MBC를 망가뜨린 공범자 중에 한 명인 김재철 사장, YTN 사장을 지낸 구본홍, 엄기영 사장이 어떤 인물들이었는지도 밝힌다.
이용마 기자가 말하는 좋은 언론이란 무엇일까. 이용마 기자는 언론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제 역할이라며 소수 권력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시각을 유지해야 하고 사회적 다수를 대표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군사 정부 시절에는 권력에 편승해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면서 정권의 특혜를 받는 부역자 노릇을 했고, 민주화 이후에는 언론 자체가 커다란 권력이 돼 조중동 등 보수신문들은 스스로 권력자가 되어 거꾸로 정치권력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용마 기자는 보수언론과 재벌 그리고 관료들로 이루어진 우리 사회의 기득권 체제를 비판하며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다고 말한다.
이용마 기자는 이 책에서 검찰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검찰의 민낯을 드러내 보이면서 검찰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검찰의 독립이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며, 검찰을 제대로 독립시키려면 특정 권력이 아니라 국민들이 아래로부터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며 검찰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국민들의 눈치를 보게끔, 검사 개개인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조직을 바꾸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만이 우리 사회 적폐를 청산할 수 있다는 목소리를 내는 이용마 기자는 검찰과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는 검찰과 언론의 인사권을 정치권력, 특히 대통령이 쥐고 있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이 사실상 검찰 총장이나 언론사 사장을 임명하는 상황에서 검찰이나 언론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제 검찰과 언론의 인사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며 국민 대리인단 제도를 주장한다. 이용마 기자는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서도 지금과 같은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KBS와 MBC 모두 정치권이 추천하는 인사들로 이사회가 구성되다 보니 정권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공영방송이 정치적 독립을 하려면 국민 대리인단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사장 후보들을 대상으로 여야가 청문회를 실시해 심사하고 국민대린인단이 투표하게 하는 방법이다. 최근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시민 200명으로 국민위원회를 꾸려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뽑는 이른바 ‘이용마 법’을 국회에 냈다고 한다. 방송문화진흥회도 12월 1일 후보자들의 정책설명회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한 뒤 국민 의견을 수렴해 7일 면접에 반영할 계획을 밝혔다.
이용마 기자는 국민 대리인단은 엘리트주의를 넘어 국민들이 직접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라며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소수의 엘리트 기득권 체제를 무너뜨리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기득권 세력들이 쌓아놓은 적폐를 청산하려면 현재의 대의제로는 어렵다는 걸 체감한 이용마 기자는 국민 대리인단에 희망을 걸고 있는 모양이다. 자신의 아이들은 좀 다른 세상에서 살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강력한 바람 때문이리라. 한 개인의 치열한 삶에 대한 기록을 담은 이 책은 우리 정치 문제를 돌아보게 하고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데 그치지 않고 희망을 설계하는 방법까지 담고 있다. 이용마 기자의 제안에 귀 기울이면 좋겠다. 사족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용마 기자가 ‘현장’으로 돌아오길, 그의 가족들과 함께 평안하길 이 밤 다시 한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