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희씨 Dec 28. 2017

“서점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 없지”

 

소설가 김영하가 청주에 한 작은 책방에서 사인회를 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알았다. 김영하 보다는 사인회가 열린다는 작은 책방이 더 궁금했다. 그 책방 이름은 ‘#질문하는 책들’이다. 보통 서점 이름과는 좀 다른 이름이라서 그런지 호기심이 더 생겼다. 어느 날 퇴근길에 #질문하는 책들을 찾아갔다. 낯선 동네에 한 작은 골목에 있는 책방은 예상보다 더 작았다. 책도 별로 없었다. #질문하는 책들에서는 주인장이 읽은 책만 판다고 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은 없지만 주인장의 취향이 담긴 책들이 자리한 책방이다.      

주인장은 바빠 보였다. 조용히 책을 고르고 계산을 하면서 살짝 물었다. “책방은 잘 되나요?” “아니요…. 책방 위치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독서모임은 잘 되나요?” “네 정말 잘 된답니다.”  책을 많이 파는 책방은 아니지만 독서모임이 튼튼히 운영되고 있다니 나름 근사해 보였다. 그날 내가 산 책은 캐브리얼 제빈 장편소설 <섬에 있는 서점>이었다. 이 책은 꽤 많이 팔린 책이라던데 요즘 소설책을 잘 읽지 않아서 전혀 몰랐다. 동네 작은 책방에서 파는 책인데 서점이라는 제목이 들어가 있길래 골랐는데 내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모처럼 정말 재밌게 읽고 꿈을 꾸게 만든 소설이다.   

   

소설 <섬에 있는 서점>의 주인공은 앨리스 섬에 있는 유일한 서점인 ‘아일랜드 서점’ 주인 에이제이 피크리다. 아내를 잃고 술에 의지한 채 살아가던 ‘까칠한’ 피크리 씨가 우연히 아이를 입양해 키우게 되고 출판사 영업사원 어밀리아를 사랑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나다. 책으로 사랑을 키우는 그들의 연애담도 재미나고, ‘아일랜드 서점’이 사람들의 삶을 서서히 변화시키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싫어하고 장르 잡탕은 더더욱 싫어하고 고아가 나오는 어린이책도 싫어하고 칙릿 소설도 싫다는 에이제이, 책에 관한 한 자신의 취향이 너무나도 확실한 에이제이는 마야를 만나면서 변화한다. 마야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곳이 바로 서점이기 때문이다. 에이제이는 서점에서 노는 마야를 “코로 냄새를 맡고 그림을 세심히 연구하고 거기서 열심히 이야기를 뽑아내는 아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니 마야를 위해서 좋은 책을 가져다 놓을 수밖에. 마야의 육아에 조언을 하기 위해 서점을 찾지 않았던 동네 여자들이 서점을 찾고, 아이들이 서점을 찾고, 에이제이는 동네여자들과 아이들을 위해 책을 가져다 놓으며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에이제이가 아니 아일랜드 서점이 앨리스 섬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서서히 풀어 보여주는 대목들이 동네 서점이 얼마나 매력적인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은근히 드러낸다. 평소 책을 전혀 읽지 않던 램비어스 경관은 서점에 자주 드나들고 책을 사게 되고 급기야 서점에 오자마자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나게 된다는 고백도 한다.  

    

에이제이의 삶은 온통 책이다. 그는 책으로 아이를 키워내고 책으로 연애를 했으며, 책으로 친구와 우정을 나눈다. 소설 챕터마다 에이제이가 소개하는 책이 나오고 그 책을 추천하는 이유가 나온다. 나는 이 부분이 정말 좋았다. “우리가 스무 살 때 감동했던 것들이 마흔 살이 되어도 똑같이 감동적인 건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책에서나 인생에서나 이건 진리다” , “나는 인생에서 단편에 더 끌리는 시기를 여러 번 거쳐왔다. 그중 한시기는 네가 걸음마하던 시절과 일치한다. 내가 장편을 읽을 시간이 어디 있었겠니, 안 그래 우리 딸?”, “어떤 사람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한 가지만 물어보면 알 수 있어.‘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입니까?” , “언젠가 너도 결혼에 대해 생각할 날이 오겠지. 주변에 딴 사람이 있어도 너밖에 안보 인다는 사람을 골라라”…. 앞으로 살아갈 딸에게 필요한 도서목록을 만들며 그 이유를 들려주는 아버지의 이야기에 여러 번 밑줄을 그었다. 

     

에이제이는 말한다. 책이 저마다 다른 건 그냥 다르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때로 실망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환호도 할 수 있다고,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고, 혼자라서 책을 읽는다고. 서점 일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을 알겠노라고. 서점은 좋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다고......

    

에이제이는 결국 병을 얻어 죽지만 슬프지 않다. 동네 사람들은 ‘아일랜드 서점’에 애착이 컸다는 걸, 아일랜드 서점이 있어서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말이다.      


동네 작은 책방에 소설 <섬에 있는 서점>이 놓인 이유를 알겠더라. 책방을 꿈꾸는 이들이 이 소설에 얼마나 설렜을지도 훤했다. 나도 지금 그러니까 ….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