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는 돈의 값이다. 돈을 갖고 있을 때 얼마만큼의 가치를 얻을 수 있는지 나타낸다. 금리가 국내 시장에서의 돈의 값이라면 환율은 대외적인 돈의 값이다. 우리나라 돈과 다른 나라 돈을 비교한 상대적 가치다. 따라서 환율은 비교군이 필요하다. 시소에 탄 A가 올라갔다면 B는 내려온다. 환율도 마찬가지다. 상대 국가가 있고 그 값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수요가 늘거나 공급이 줄 때 값은 더 비싸진다. "외환 시세는 나라 힘만큼 세진다"는 말이 있다. 힘센 나라가 발행한 통화에 글로벌 수요가 몰리기 때문이다. 기축통화 '강달러'가 그 예시다.
예컨대 1달러에 1000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원달러 환율은 1000원이다. 1000원을 내야 1달러짜리 물건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달러를 사려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는 상황이 닥치면 달러 값은 올라간다. 우리 돈으로 1500원을 줘야 1달러를 살수 있게 되는 상황이 달러 강세다. 즉 원화의 가치가 평가절하된 것이다. 원달러 환율은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오른 상황을 '환율상승'이라고 표현한다. 정리하자면 '강달러'일 때 원화는 약세다. 달러 대비 원화가 약세 압력을 받으면서 환율이 상승했다는 표현으로도 쓸 수 있다.
'강달러'는 지금의 상황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4월 장중 1400원을 터치했다가 5월 15일 현재 1360원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2022년까지만 해도 원달러 환율은 1100원대에서 움직였다. '강달러'가 나타나는 상황을 몇 가지 더 살펴보자. 달러가 귀해지거나 달러를 사려는 사람이 많을 때 강달러가 나타난다. 대표적인 게 미국의 금리인상이다. 미국이 달러에 이자를 더 쳐주니 달러를 가지려는 수요는 증가한다. 2021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금리인상이 지금의 강달러를 만든 주요인이다.
한국도 같이 금리인상을 하면 어떻게 될까. 원화의 가치가 올라 달러와의 격차를 줄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한국이 금리를 동결하거나 인하한다면 어떨까. 달러 값은 높아지는데 원화 매력은 떨어지니 원화 가치는 더 평가절하되고 원달러 환율은 솟구치게 된다. 현재 벌어지는 일이다. 전문가들이 한미 간 기준금리 차를 좁혀야 한다고 거듭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돈 값'도 다른 상품처럼 주로 시장에서 수요,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국가가 주도해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일도 다반사다. 수출 경쟁력 확보가 목적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들은 대개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 통화의 가치를 일정 수준으로 낮추려 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1달러에 1000원이던 원달러 환율이 1500원으로 오른다면 1달러만 주고도 1500원짜리 물건을 살 수 있게 된다. 값이 저렴해지니 한국 물건을 찾는 미국 소비자들이 늘고 한국 제품 수출은 경쟁력이 생긴다.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최근 엔화 가치가 급락하자 관광객들이 일본으로 물밀들이 밀려 들어가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100엔이고 호텔 하루 숙박비는 1만 엔에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해보면 쉽다. 하룻밤 묵으려면 100달러가 필요하다. 환율이 200엔으로 뛰면 이 비용은 50달러로 줄어든다.
다시 한국의 예로 돌아가자.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이 잘되면 달러가 한국으로 유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적정 수준을 넘는 달러가 공급되면 공급과잉으로 달러 값은 하락하고 원화 가치는 상승한다. 원달러 환율은 하락, 다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럼 시장에 풀린 달러를 회수해 가격을 방어(환율상승 유도)해야 한다. 이때 등장하는 '큰손'이 정부다. 달러를 사고 원화를 풀면 원달러 환율이 다시금 오른다. 국가는 매입한 달러를 '외환보유고'에 고이 저장한다.
문제는 이러한 정부의 환율 개입은 국제사회의 반발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2015년 중국이 수출 증가에 애로를 겪자 위안화를 기습절하(사흘동안 환율이 약5% 가까이 큰 폭 상승)해 국제사회의 반발을 가져온 사례가 대표적이다. 위안화의 평가절하가 지속되자 2019년 8월 5일 미국 재무부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 이후 25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미중 무역갈등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 기업 투자 제한 등의 제재가 가해지기 때문이다.
일본을 '잃어버린 30년'에 빠뜨린 것도 이 환율 전쟁이다. 1980년대는 일본 제조업의 전성기였다. 미국 제조업은 저물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이 경쟁에서 낮은 엔화 가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 제품은 일본 제품에 가격 경쟁력에서 한참 밀렸다. 미국은 엄청난 대일본 무역적자에 시달렸다. 미국 정부는 세계 주요국들을 1985년 뉴욕 플라자호텔로 불러모았다. 그리고 일본의 엔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올리라고 압박했다. 그 유명한 '플라자 합의'다. 당시 250엔대였던 엔달러 환율은 이듬해 150엔까지 급락(엔화 가치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