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이 없고 싶습니다

<토지> 월선이를 떠나 보내는 장면에서 남겼던 기록

by 날개 달 천사

월선이라는 보송한 솜털같은 인물의 마지막 장면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가버리다니...그녀를 기어이 떠나 보내야 한다는 마음에 고운 벗을 떠나 보내는 듯,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자꾸만 힘이 들어갔어요.


그녀, 월선이가 생을 마감하는 장면은 저에게 ‘또 하나의 사랑’이었습니다.

길흉사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의 감정이 확대된다고 하잖아요. 일평생 자갈밭 같기만 하던 월선이의 삶은 종착역에 다다르니 꽃길이었고 그녀는 꽃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꽃같은 그녀, 누구도 그렇게 변함없이 곱고 다정하게 살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더 기억에 오래 남을 월선이에요.



월선의 죽음을 읽으면서 사랑하는 이들과의 헤어짐이 생각납니다.

곱고 예뻤던 다정한 우리 할머니, 그리고 묵묵히 토닥여 주시던 듬직한 외삼촌, 나를 너무 예뻐하시던 큰이모의 눈빛, 울엄마 담으로 믿고 의지한 따뜻했던 외숙모, 서글서글한 미소로 늘 다정했던 사촌오빠,

그리고 바로 얼마 전 하늘 나라로 가신 하나뿐인 우리 고모까지...다시 떠올리니 가슴이 저려 옵니다.


외숙모를 제외하곤 모두 예고없이 맞이한 이별이었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황망한 헤어짐은 슬픔이란게 끼어들 틈이 없을만큼 놀라 말문이 막히더군요. 천청벽력같은 죽음은 그들을 제대로 추모할 시간도 갖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이별의 슬픔보다는 오히려 그 분들의 부재 뒤에 따르는 사회적 수습에 마음만 바빴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사랑하는 사람을 이젠 볼 수 없단걸 실감하니 그렇게 미안하고, 그리움이 클 수 밖에 없더군요.


오랜 병치레 끝 준비된 이별도 가슴 미어지고, 돌아보니 여전히 미련이 많이 남긴 마찬가지였어요.

엄마 다음으로 믿고 의지한 외숙모의 죽음은, 월선이의 영원한 사랑, 홍이에게 삶의 절반이 잘려 나간것처럼 저도 그랬습니다.

10년이 훨씬 넘는 투병 생활을 하시면서 늘 긍정적인 생각과 웃음을 잃지 않던 외숙모. 아프신 와중에도 저에겐 언니처럼 다정한 인생 선배이셨습니다.

그런 외숙모가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나실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때가 막상 닥치니 너무 그리워서 눈물 흘린 시간이 몇 달이었는 모릅니다. 살아 계실 때 여한 없이 대해 드리지 못한게 후회가 되었어요.




결국 이별에는 연습도, 준비도 없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준비한들 소용이 없지요. 그래서 헤어짐은 참 어렵고 힘듭니다. 여전히 고통스럽고요.

누군가와 매정하게 돌아서는 것이 체질에 맞지 않아 사람에게 늘 미련이 많습니다. 인연을 끈질기게 붙잡고 놓질 못하니 애달픈 인생입니다.

그토록 붙잡고 늘어지면 ‘여한이라도 없어야’ 할텐데 마음은 그렇지도 못합니다.

사람을 온전히 사랑해서 한 톨 아쉬움이 남지 않으면 그때는 정말 행복한 이별을 할 수 있을까요?




용이와 월선의 사랑처럼 제게 닿은 인연들에게도 여한이 없고 싶습니다.

내 곁의 사람들과 여한없이 사랑하고, 때가 되면 아픔없이 보내 주고 싶습니다.

그런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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