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를 읽고 환이에게 보내는 기도
또 한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책 속에선 월선이 떠났고, 개인적으론 월선을 닮은 제 고모께서 좋은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게 인생이라는데 가는 이가 있으면 오는 이도 있겠지요? 그런 마음으로 월선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안태’라는 주제로 생각해 봅니다. 안태(安胎)란 태를 지켜내는 일이지만, 이 소설에서의 안태는 한 인간이 관계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 더 가깝지 않나 합니다.
하나의 인연이 떠나니 다른 인연이 돌고 돌아 길상과 서희에게 찾아옵니다.
어미와의 태를 끊어내지 못한 김 환. 그는 구천이 아닌 김 환으로 나타납니다.
서희와 길상 앞에 단단히 엉킨 태를 칭칭 감고서 불쑥 나타납니다. 뱃속에서는 탯줄이 감겨 있으면 아이의 생명이 위험해지듯 긴 세월 해결하지 못한 탯줄처럼, 그들의 숨길도 한쪽이 꽉 막혀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제 환이라는 탯줄을 끊어내려 작정했나 봅니다. 그리고 새로 태어나려나 봅니다. 엉킨 실타래 같은 인연을 잘 풀어내야 태아가 순산하듯 관계도 시작될 테니까요.
그렇게 환이는 길상과 서희 앞에 숙부님, 아니 선생님으로 나타납니다. 편하게 숨 쉬지도 못하고 목구멍이 막혀 있던 엄마 잃은 어린 구천은 새로 태어나려고 크게 울어 댑니다. 마치 엄마의 뱃속에서 산도를 지나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울음으로 새로운 호흡이 시작되듯 말이죠.
그리고 태를 잘라내 당당하게 독립된 숨을 쉬는 아기처럼 환이는 어머니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길상과 서희를 마주합니다.
뱃속에서 웅크리며 숨죽여 지내온 시간 동안 근근이 자신을 지켜준 태, 환이가 만주로 향하며 스스로에게 내뱉은 말은, 정서적 독립을 향한 첫울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님!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네를 다칠 수 없습니다.”
“어머님! 저는 한번 짖어보려고 만주 땅에 왔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어미에게서 벗어나려고 마지막 악을 쓰고 울부짖는 환에게 그동안 참 잘 버텨 왔다고 도닥여 주고 싶네요.
어머니와 같은 산 지리산, 사랑하는 여인이 있는 산 묘향산을 거쳐 오면서 깨끗하게 허울을 벗고 새로 태어납니다. 두 여인이 정기로 환이의 태를 씻겨 줍니다. 세상 밖으로 머리를 내밀게 합니다. 이제부터 시작이겠지요. 다른 세상에서 단단한 ‘환’으로 거듭나겠지요.
길상과 서희와 엮어갈 인연이 궁금해집니다.
이제부턴 조금은 편안하고 태평한 시간을 누리길 바라봅니다.
그의 질기디질긴 삼 같은 태를 고이 묻어 두고 환에게 평안이 찾아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