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 엔딩 스토리
우리 부부는 동갑내기 친구이다. 친구였다가 연인이 되었고 오랜 연애 기간을 거쳐 결혼을 했다. 동갑이라 편한 부분이 많아서 너무 막역하게 지내다가 장난이 도를 지나쳐 자주 싸움으로 번졌고 모든 힘과 열정과 정성을 다해 싸우고는 금세 풀어져 다시 친한 사이로 돌아갔다.
문제는 싸움의 주제가 논문, 곧 졸업으로 이어지면 그 싸움이 영 끝나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이 아예 석사가 뭔지, 논문이 뭔지, 대학원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그를 이해시키는 일이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편은 석사를 졸업한 사람이었으며, 그것도 석사를 2년 만에 졸업한 공대생이었다. 그에게 인문학 전공 석사학위논문의 전 과정과 졸업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싸울 때 말을 조리 있게 하는 편이 아니어서 이 싸움은 한번 시작하면 고성이 난무했고 서로 상처 주는 말을 끝끝내 내뱉고 나서야 끝이 났다. 물론 그 끝이 정말 끝은 아니었고, 몇 시간 동안 싸우다가 결론이 나질 않으니 지쳐서 휴전하는 것이었다.
싸움의 요지는 주로 이렇다. 뭐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가정 경제나 2세 계획 등을 준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남편의 성격 상 나의 논문이 언제 끝날 지 모르고 나 역시 언제 끝난다고 말해주지 못하는 점을 끔찍하게 답답해했다. 나는 처음에는 좋게, 이게 내가 언제 졸업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내가 학교에 다시 돌아간 게 1월이니 봄 학기 심사는 당연히 못 들어가는데 그렇다고 가을 학기 심사를 들어갈 수 있느냐, 그건 내 권한 밖이고 지도교수님도 나의 개인 사정보다는 어쨌든 내 글의 완성도를 보실 거고, 내 앞에 선배들의 심사가 우선이기 때문에 나를 급하게 졸업시키실 수는 없다... 고 말한다. 나는 있는 그대로를 말한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란, 나도 내가 언제 졸업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나는 내가 내년 언제 졸업을 할 수 있다고,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섣불리 말했다가 그 시기를 놓쳤을 때 불거질 더 큰 싸움을 예감했기에 더 몸을 사려서 말했다.
게다가 이 당시 여전히 나는 텍스트 리딩 중이었으며 낭시의 이론을 이해하기에 바빴다. 논문은 당연하게 단 한 장도 쓰지 않았으며 지도교수님께 보여드리는 프로포절도 통과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남편은 벌써 졸업을 운운하고 있으니 나 역시 답답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남편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논문을 쓰는 당사자인 내가 졸업 시기를 알 수 없다고 하니 도대체 그럼 누구한테 물어봐야 한단 말인가?
그러다 보니 남편은 그걸 왜 네가 모르냐, 교수님하고 딜을 해라, 그럼 자기는 너 논문 쓸 때까지 무조건 기다려야 하는 거냐, 대충이라도 언제 끝날지 말해줄 수 없냐... 라며 닥달했고, 나는 나도 모르는 걸 어떻게 말을 하냐, 우리 학과 특성상 절차가 있어서 나부터 내보내 달라고는 못한다, 나도 그때 가봐야 안다, 나도 힘들다...라고 맞받아친다. 그러니 결론이 날 수 있겠는가.
물론 남편과 이런 잦은 싸움 덕분에 나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느긋하고 천하태평인 내 성격에 세월아 네월아 하고 논문이야 알아서 써지겠지 라며 여유를 부리지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했기에 그나마 1년 6개월 만에 졸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에야 이렇게 말하지만 당시에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는데 논문을 쓰며 답답하고 힘든 마음을 어디에 풀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누굴 원망하겠는가, 내가 한 선택이고 내가 쓸 글이고 모두가 내 탓인걸.
그러다 어느 날에는 남편과 여느 때와 같은 싸움을 하다가 눈물이 터졌다. 남편 앞에서 운 적은 프러포즈를 받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정말 진심이 나왔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연민에서 나온 눈물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남편에게 나도 내가 한 선택이라서 누굴 원망할 수도 없고 나만 잘하면 된다는 걸 알지만 혼자 하는 공부라 진도가 더디고 내용도 어려워서 하루 종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교수님도 공부가 부족하니 더 하라고 하시고 나라고 빨리 졸업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닌데 나도 언제가 될지 몰라서 답답한데 이런 답답함을 말할 사람이 없는 게 가장 지친다고, 제일 가까운 사람이 남편인데 너마저 나를 이해해주지 않고 오히려 채근하기만 하니 정말 힘들다고...
그렇게 한번 울음이 터지고 싸움은 종결되었다. 휴전이 아닌 진짜 종전이 된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이 남편도 처량해 보였던지 다시는 그 주제를 입 밖에 꺼내지 않겠다고, 힘이 되어주기는커녕 몰아세워서 미안하다고 말해 주었다. 이렇게 쉽게 끝날 거였으면 진즉에 울걸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알량한 내 자존심은 이렇게 막장에 이르러서야 꼬리를 내린다.
재미있는 건 지금은 남편이 박사를 하고 있는데 지도교수님이 언제 졸업을 시켜줄지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남편에게 졸업이 늦어지고 불분명해지는 걸로 뭐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남편은 제 발 저린 마음으로 나에게 자기를 몰아세우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하고, 나는 그것 보라며,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