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논문일기

금욕과 찌질 사이

돈은 아껴야겠고, 사람은 만나고 싶고, 공부는 해야 하고

by 서수

일전에도 말했다시피 논문을 쓰기 위한 생활은 수도승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속세와 단절된 채 금욕을 수행하는 것이다.


일단 돈이 없다. 집에서 학교를 주 5일 이상 통학하는 데 드는 교통비, 핸드폰 요금, 학생식당에서 해결하는 2끼의 식사, 식사 후에 마시는 커피, 참고서적 구입, 기분전환용 문구 구입 등이 소비의 전부이다. 아, 가끔 아주 가끔 친구들과 만나서 외식할 때도 있지만 한 달에 한번, 많게는 두 번 정도일 것이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영화를 보면서 기분전환도 하고 싶고 미술관에 가서 전시도 보고 싶고 이태원에 가서 친구들과 새벽까지 놀고 싶다. 하지만 충분한 돈이 있다고 해도 이런 것들을 할 수가 없다.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침 일찍 연구실로 '출근'해서 밤 11시 넘어서 '퇴근'하는 삶이 심적으로는 훨씬 편안하다.

무엇보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싶어도 할 말이 없다. 너 요즘 뭐해?라는 질문에 응, 나 논문 써. 잘 돼가?라는 질문에 뭐, 그럭저럭. 그렇지만 그럼 언제 졸업해?라는 질문에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나의 졸업은 내 손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화는 종결된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고, 만나는 사람들의 그룹도 다양했어서 초중교 동창 모임, 학년별 고교 동창 모임, 대학 동창 모임, 교회 모임, 어학연수 동기 모임, 이전 회사 사람들 모임 등등 단체 채팅방에서는 항상 '언제 볼까?'라는 메시지로 불이 났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들을 다 만날 시간도, 돈도, 정신적인 여유도 바닥이 나서 이 핑계 저 핑계로 한 두 번 거절하다가 결국엔 거절밖에 할 말이 없어서 메시지를 읽씹하게 되었다. 논문 쓰는 것이 무슨 대수라고 인간관계까지 정리해가면서 해야 할까 싶지만 어쨌든 내가 쓸 수 있는 돈과 집중력엔 한계가 있어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 다 만나고, 하고 싶은 것까지 다 하면서 논문을 쓰기에는 내 깜냥이 부족했다.


언젠가는 친한 대학원 언니와 기분 삼아 문구를 구입하러 갔다가 마음에 드는 샤프를 발견했는데 체크카드에 잔액이 없어서 그 언니가 사주었던 적이 있었다. 샤프의 가격은 3,500원이었다. 한 번은 맨날 저렴한 학생식당 밥만 먹다가 너무 질려서 학교 안에 있는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싶어서 갔는데 샌드위치 하나에 6,000원이나 해서 발길을 돌렸던 적이 있다. 학생식당 식권은 3,000원이었고 말이다. 그 와중에 후배와 커피숍에 가면 꼴에 선배라고 나는 계산대 앞에서는 주춤거리지 않고 늘 먼저 카드를 내밀었다. 내일 마실 커피를 당겨 마셨다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그러다가 해피포인트가 쌓여서 커피 한잔을 공짜로 마실 수 있는 날이면 그게 그렇게도 행복했다.


아무튼 나는 논문을 쓰는 1년 6개월 동안 그간 벌어놓은 돈을 까먹어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 소비를 줄이며 금욕을 자칭한 찌질한 삶을 살았다. 한 가지 위안이 되었던 점이라면,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연구실 학생들의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금욕과 찌질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각자가 선택한 고통의 무게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오롯이 감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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