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비웃을 수 없는 이유
우리 과 연구실 바로 옆에는 철학과 소속의 연구실이 하나 있다. 그곳에는 나이가 중년을 웃도는 박사과정 선생님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하면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중에 우리가 푸코 아저씨라고 부르는 한 남자 선생님이 있었다.
연구실이 붙어 있다 보니 서로 인사는 하지 않았지만 거의 매일 복도에서 마주치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마주치고 복도 끝에 있는 라운지에서 마주치고 정수기를 이용할 때마다 마주치느라 안면은 매우 익숙한 터였다. 물론 직접 인사를 하지는 않았는데, 일단은 그 선생님들은 나이가 너무 많아 보이셨고(대충 봐도 40대 후반에서 50대 정도였다) 무엇보다 늘 시선이 허공이나 바닥을 향해 있고 혼잣말을 중얼중얼하셨으며(어떤 날은 좀 크게)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기 때문에 약간은 무서워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나는 그 선생님들이 다른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주 가끔 2G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는 걸 본 적은 있는데 누군가와 수다를 떤다든지 같이 밥을 먹으러 나간다든지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사실 나는 '철학과'에 대한 어떤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아저씨들을 보며 이 고정관념이 더 공고해졌던 것 같다. 원래 나는 철학과를 지망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고 새내기 시절에 철학과에서 주관하는 교양수업과 전공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교양수업까지는 괜찮았다. 다른 단과대학 학생들도 많이 들었고 교수님도 교양수업에 걸맞은 주제로 재미있게 수업을 하셨으니. 그런데 전공수업은 달랐다. 수업 내용뿐 아니라 그 분위기를, 철학 전공 학생들이 내뿜는 그 차갑고 어두운 아우라를 나는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물론 미학도 그 뿌리가 철학에 있으니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아니다. 철학은 클래스가 달랐다. 철학은 인문학의 정수인만큼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다들 비상한 머리를 가진, 똑똑한 학생들이었다. 한 간에 떠도는 소문에는 철학과 교수님들도 철학 전공에 진입하려는 학생들을 아무나 받지 않고 똑똑한 학생들 위주로 뽑는다고도 했다. 아무튼 굉장히 하드코어 했다. 내 머릿속에 각인된 철학과의 이미지는.
푸코 아저씨는 작은 체구에 조금 통통한 몸, 얇게 찢어진 눈, 그리고 약간 벗겨진 머리를 가진 중년의 연구생이었다. 우리가 그 아저씨만 유독 기억하는 이유는 어떤 사건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우리 중 누군가가 그 아저씨 옆을 지나가다가 우연찮게 아저씨의 전공이 미셸 푸코라는 것을 알게 되어 우리에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거의 매일 마주치는 아저씨들의 정체를 알게 모르게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그 하나의 정보가 여러 명의 선생님들 중에 유독 그 아저씨만을 대표로 기억하게 해주는 방아쇠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아저씨는 푸코에 대해 어떤 공부와 연구를 하시길래 아직까지 졸업을 못하시고 학교에 남아있는 걸까.
나는 부지런한 타입이라 학교에 아침 8시나 9시에 나올 때가 많았다. 그 시간에도 아저씨들은 나와 있었다. 그리고 버스가 끊기기 전에 학교를 나가야 하므로 밤 11시에 연구실에서 나오면 그때도 옆방에 불은 켜져 있었다. 아저씨들은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게 매일매일 공부라는 노동을 하고 계셨다. 말도 없이, 인간관계도 없이.
처음에 우리는 안 좋은 태도로 아저씨들을 동정 혹은 비웃었던 것 같다. 도대체 왜 그 나이까지 졸업을 하지 않고 학교에 나와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보통의 평범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왜 철학 논문을 위해 자연인처럼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래서 우리는 논문의 진척이 지지부진해지거나 공부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을 때, 혹은 다 내려놓고 생각 없이 놀러 다니고 싶을 때 그 아저씨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빨리 논문 써서 학교를 떠나야지, 우리도 저 아저씨들처럼 논문 못써서 학교에 남아있으면 어떡해.'
그러다 아저씨들에 대한 나의 마음이 달라진 건 나 역시 그렇게 쉽게 학교를 떠나지 못할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들고나서부터였다. 대학원 졸업은 내 능력의 범위 밖이므로 나 역시 언제 졸업하게 될지, 20대 중반에 들어온 대학원을 30대 중반에 나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저씨들도 자신들이 좋아서 학교에 남아있는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렇게 살고 싶어서 자연인처럼 사는 것은 아니리라.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당시의 내 모습도 아저씨들과 많이 다르진 않았다. 인간관계를 일단은 올 스톱시켰고, 커피를 사 마시기보다는 봉지커피를 사서 정수기 물을 주로 사용했으며, 무엇보다 바람을 쐬러 혼자 교정을 돌아다니다가 내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중얼 대고 있었다. 어쨌든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던 것을 입 밖으로, 내 언어로 정리해서 직접 말해보는 것은 중요하니까. 나는 햇살 좋은 교정에서 학부생들이 삼삼오오 밝은 색의 옷을 입고 재잘거리며 몰려다니는 그 사이를, 칙칙한 옷을 입은 채 시선은 갈 데 없이 허공을 향해 있고 골똘히 생각에 사로잡힌 심각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며 돌아다니는, 푸코 아저씨였다.
철학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뇌와 사색에 사로잡힌 고독한 산책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나갔다는 칸트도, 검은 옷을 입고 파리의 어두운 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닌 보들레르도, 벤야민도, 유명한 관광지마다 하나씩은 있는 '철학자의 길' 코스도 사유의 시작과 끝은 고독한 산책이었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우리도 인문대학의 뒤에 난 좁은 길을 철학과 교수님의 이름을 따 ㅇㅇ로(路)라고 불렀다. 물론 그렇게 지은 이유는 그 교수님이 뒷길에서 자주 출몰하셨기 때문이었는데 왜 하필 그 철학과 교수님은 인문대학 앞에 있는 큰길을 놔두고 항상 뒷길만 이용하셨는지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한다. 좁고 긴 사유의 길, 그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 자신일까 아니면 세상의 끝일까. 그 길을 끝내고 싶지 않아서 푸코 아저씨들은 계속 우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