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논문일기

예기치 않은 위로

인생은 9회 초 2 아웃부터

by 서수

보통 인생을 야구에 빗대어 표현할 때, 인생은 9회 말 2 아웃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그건 내가 속한 팀, 내가 응원하는 팀이 후공이었을 때의 이야기고(그래서 지고 있다거나 동점이었을 때 9회 말 2 아웃 마지막 타자의 공격에서 드라마틱하게 득점을 하게 되어 경기를 뒤집게 되면 야구 몰라요 인생 몰라요 하는 것이다), 선공이었을 때는 9회 초 2 아웃에 뭔가 일을 내야 한다. 팀이 비기는 상태가 아니라 지고 있다면 말이다.


나는 프로야구팀 중에 두산 베어스를 응원한다. 야구에 대해 1도 모르던 시절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에게 끌려 야구장에 가게 되었는데 그 경기에서 이기는 팀을 내 팀으로 정하겠다고 했었다. 두산과 넥센의 경기였고 두산이 이겨서 그때부터 두산을 응원하게 되었다.(남편은 대전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한화 이글스를 응원한다) 아무튼 그때부터 야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야구는 축구와 달리 경기의 흐름이 느리지도 않았고 농구처럼 정신없이 빠르지도 않았기에 9이닝을 적당한 긴장감에 꾸준히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가장 좋은 건 큰 점수 차로 지고 있다고 해도 경기가 시시해지지 않고 보는 내내 긴장을 놓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언제 어느 타선에서 점수가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투수전은 얼마나 더 짜릿한지. 선발 투수가 단 9개의 공으로 세 타자 연속 삼진 아웃을 시켜 이닝을 끝낸다거나, 불펜 투수 없이 9이닝을 모두 완투하고 들어갈 때면 기립박수가 절로 나왔다.


논문을 쓰는 그 퍽퍽한 시절에 야구는 그나마 나를 논문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일주일에 하루 빼고 6일 동안 경기를 하니 이 지긋지긋한 논문 이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았던지. 지든 이기든 야구를 보면서 나는 숨통이 좀 트였고 비록 직관을 하러 경기장에 갈 수는 없어도 연구실 한 구석에서 문자중계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 몸과 마음은 잠실이었다.


그러다 그것이 찾아온 것이다, 바닥.(논문일기 4월 2일자 참고)


그나마 쥐어 짜내서 만들어 놓은 나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다 무너져버린 그날 이후로 나는 한숨이 늘었고 얼굴이 어두워졌다. 점점 시간은 흘러만 가고 프로포절 발표는 눈 앞으로 다가오는데 내가 해놓은 것들이 0이 된 것 같은 그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논문과 졸업에 대한 확신이 사라질 만큼 사라져서 그 심정을 달래기 위해 밤이 되어 집에 갈 때가 되면 버스를 타지 않고 연구실에서 지하철 역까지 걸어 내려왔다. 가을밤의 선선하고 쓸쓸한 공기를 맞으며 그렇게라도 걷지 않으면 정신이 돌 것 같아서였다. 걷는 동안 나는 야구 중계를 보면서 내려왔는데 그 날은 9회 초에 이미 두산이 9:4의 스코어로 넥센에게 지고 있었다. 6회까지 9:2의 스코어로 지고 있다가 7회와 8회에 점수를 내서 한 점 한 점 따라오기는 했지만 9회 초 1 아웃에 5점 차이니 그냥 그날 경기는 대충 마무리하고 선수단이 일찍 퇴근할 줄 알았다. 사실 야구 자체는 별 것 아니었지만 그조차도 나에게는 낙심 포인트였다. 내 마음이 이렇게나 상해 있는데 야구라도 좀 시원하게 이길 것이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어처구니없는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제가 논문을 쓰고 졸업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야구 경기를 통해 보여주세요.' 졸업의 가부 여부를 야구에 빗대어 묻다니. 도대체 이 야구 경기와 내 졸업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물론 나는 이런 어이없는 기도를 할 만큼 무너져 있기는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 쓸데없는 기도를 하고 나서 다시 핸드폰으로 중계화면을 켰는데, 두산이 1 아웃 이후 내리 5 득점을 하더니 최종 스코어 11:9로 경기를 마무리지은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이런 작은 에피소드에서도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시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물론 나의 기도 때문에 두산이 질 경기를 이겼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기도하지 않았어도 두산은 이겼을 것이고 두산이 졌다고 하더라도 나는 '졌나 보네' 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논문을 썼을 것이다. 단지 이것은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인데, 그는 나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이런 유아적이고도 어이없는 기도에도 반응하신다는, 우리 둘만 아는 무언의 연결인 것이다.


2015년 10월 14일 수요일의 경기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푸코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