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 바르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얼마 전 넷플릭스에 올라온 아녜스 바르다의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았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인 바르다와 사진작가 JR이 즉석 사진 기계를 장착한 트럭을 몰고 프랑스의 외딴 마을들을 누비며, 그때그때 우연히 만난 사람들 -주로 노동자들-의 얼굴들을 트럭 안에 구비된 카메라로 찍고, 즉석에서 프린트하여 그 마을의 벽과 건물들, 폐허들, 창고의 대문 등에 도배하듯이 혹은 벽화를 그리듯이 사진을 붙이는 프로젝트(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내용이었다.
주로 노동자들의 얼굴을 찍는다고 했는데, 그 노동자들이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타인들과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공생하는 노동자들이었다. 재밌는 건, 우연히 염소 목장을 방문하게 된 바르다와 JR은 처음에는 염소들이 뿔을 가지고 있으면 서로 싸우려고 하기에 염소의 뿔을 인위적으로 잘라서 기르는 목장에 갔다가 그다음 목장에서 절대 뿔을 자르지 않고 자연적인 모습 그대로 기르는 목장 주인을 만나게 된다. 바로 여기서 얼굴이 찍히게 되는 것은 당연 후자의 목장주이다.
그들이 만난 사람들 -오래된 탄광 마을에서 탄광촌을 떠나지 않고 자신의 거주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 남자 노동자로 가득한 선박업에서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 준 아내들, 폐허가 되어 건물 외벽만 남은 마을에서 그 장소를 기억해주는 사람들 등등-은 우연히 만난 얼굴들이고, 바르다는 우연히 만난 얼굴들을 찍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얼굴마다 사연이 있다.
멋진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는 게 난 좋았어.
그래, 우연이야말로 늘 최고의 조수였거든.
아이러니한 것은 영화의 말미에,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얼굴은 사진으로 찍었지만 바르다 자신의 인생에서 많은 영감을 나누었던 친구이자 동료인 장 뤽 고다르와는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를 만나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지만 그의 집 문 앞에 도착한 바르다와 JR은 현관문에 쓰여 있는 암호와도 같은 고다르의 메시지에 발걸음을 돌린다. 그 메시지는 그와 오랜 시간 함께 한 바르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에 바르다는 비록 얼굴을 마주하진 못했어도 그녀에게 애정이 여전히 잔뜩 남아 있는 고다르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그곳을 떠난다.
내 주변에 있는 멋진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얼굴들을 떠올려 봤다. 그 얼굴들은 바로 나의 여자 친구들. 첫 만남은 우연이었겠지만 지금은 깊은 인연이 되어 내 곁에 남아 있는 내가 사랑한 여자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이 기획의 첫 시작이었다. 그녀들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소시민들로, 각자의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 삶을 나의 애정이 잔뜩 묻은 필터로 다시 들여다보면 한 명 한 명의 삶이 찬란하게 빛나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이 지면에 <내가 사랑한 여자들>이라는 타이틀 아래 10명의 나의 지인들에 대한 찬사의 글을 쓰고자 한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비밀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당연한 얘기지만- 무례하고 불친절하게 훔쳐오진 않을 것인데, 이 시리즈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에 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멋모르는 20대에는 홀딱 빠졌다가 어느덧 마흔을 목전에 둔 나이가 되어 다시 봤을 때 학을 떼게 된 영화, <클로저>에서 대니얼이 자신의 연인 앨리스의 (스트립 댄서로서의) 삶을 다룬 소설을 출간했을 때, 대니얼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던 안나는 그에게 묻는다, 그녀의 삶을 훔친(steal) 것에 허락은 받았느냐고. 그때 대니얼은 훔친 것이 아니라 빌려온 것(borrow)이라고 안나의 질문을 정정한다. 시간이 흐른 뒤, 안나가 자신이 여태까지 찍어 온 타인의 초상사진을 가지고 전시회를 열었을 때 대니얼은 똑같이 되묻는다, 그들의 얼굴을 훔친 것이냐고. 그리고 안나 역시 똑같은 대답을 한다, 훔친 게 아니라 빌려온 것이라고.
빌려온 것이라면 응당 다시 돌려주어야 할진대 영화에서는 빌려온 무언가를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는 제스처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사랑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빌려 온 대신, 그들에게 글에 담긴 나의 애정을, 찬사를 돌려줄 것이다.
내 곁에 남아 주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