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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라이어티삶 Aug 02. 2022

이어폰 없이 10km 달리면 어떤 일이 생길까?

서강대교 - 한남대교 10km를 뙤약볕에 달려보았습니다

저는 헬스 같은 실내 운동을 즐겨하는 사람입니다. 퇴근하면, 짐만 두고 그대로 헬스장으로 가서 30-40분 운동을 하고 다시 집에 들어옵니다. 코로나 때문에 헬스장이 다 문을 닫은 그 긴 시간 동안, 운동을 못하는 갑갑함에 KF94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밖으로 나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달리는 내내 바뀌는 풍경과 매번 다른 날씨, 온도, 습도가 조깅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오디오북이나 유튜브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고속 재생으로 듣고 있으면 달리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고, 유익한 내용도 접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오늘도 이어폰을 챙겨서 조깅을 나갔습니다. 

어떤 콘텐츠를 들으면서 달릴까... 유튜브를 뒤지다가 가로수에 붙은 매미가 하도 시끄럽게 울어대서 오늘은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그냥 뛰어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제 발소리와 숨소리가 들립니다.

몸이 무거워서 쿵쿵 거리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호흡이 차올라 숨소리가 거칠어집니다. 

우거진 나무 아래를 지날 때는 매미소리 때문에 발소리고 숨소리고 아무소리도 안 들립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짜잔~ 하고 드러나는 새빛 둥둥섬과 한남대교 (목적지)


한참을 달리는데, 머리 속이 점점 복잡해집니다. 오만 생각이 다 들기 시작합니다. 

제 상황이 요새 좀 다이나믹하거든요. 


숨이 차오르긴 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마 뇌가 착각을 했나봅니다. 


이것저것 막 떠오르는 생각들에 자동으로 우선순위를 매겨주는 것 같이 점점 정리가 되기 시작합니다. 몸이 힘들어지면서 '이건 지금 안 중요하고~, 요건 좀 중요하긴 한데 그래도 저게 제일 중요하지. 지금 숨 넘어가게 생겼는데, 다른데 신경쓰면 안되지!!' 이런 흐름이 아니었을까요?


시끄러운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달리기만 했는데, 머리가 정리되었습니다. 

이런 조깅 경험은 나름 처음이라,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에 메모를 남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손이 떨려서 노트 펜으로 글도 못 쓰겠고, 자판을 누르는데 계속 오타가 납니다. 

급한대로 녹음앱을 켜서, 나름 정리된 생각을 마구마구 녹음했습니다. 


한 번 이렇게 정리된 상황을 녹음으로 기록하고 나니, 그 다음 정리할 것들이 또 떠오릅니다. 

이것도 또 어느정도 자동 정리가 된 후 한참을 녹음해두었습니다. 

한참을 달리다가 목표한 10km 지점인 한남대교까지 찍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녹음 메모를 들어봤습니다. 


숨이 차서 헥헥거리면서도 계속 뭐라고 뭐라고 떠들어댑니다. 

정확하게 다 들리지는 않지만, 상황과 맥락이 떠올라서 집에 돌아간 후에도 정리할 수 있겠다싶습니다. 


머리가 복잡할 때, 달린다는 분들이 꽤 계셨는데, 

이제야 그게 무슨 소린지 좀 알게 되었습니다. 


제 다이나믹한 상황들 덕분에 당분간은 자주 뛰어나올 것 같습니다. 

듣지도 않을 이어폰은 아예 두고 달리게 될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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