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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라이어티삶 Aug 15. 2022

자다 말고 새벽 2시에 어딜 나간 거야?

그리고 새벽 3시에 들어왔지...

8.15 광복절을 기념하는 마라톤 대회가 있어서 신청했었습니다(링크). 8.15km를 달리는 패키지였는데, 근래 폭우가 쏟아져서 꼭 당일에 뛰지는 않아도 되고, 각자의 기록을 인증하면 되는 그런 대회였죠. 14일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에어컨을 안 켜서인지 누워있는 동안 끈적거림에 뒤척이다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게 새벽 2시였죠.

그 상황에서도 곤히 자고 있는 아내가 깰까 봐 살곰살곰 옷 갈아입고 나섰습니다. 새벽 2시에 8.15km를 달리기로 마음먹은 거죠. 사실 '마음을 먹었다'라고 까지 하기도 좀 그랬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슬금 나간 거였거든요.


조깅 혹은 단거리 마라톤이 운동으로서의 좋은 점은, 장비, 준비 이런 게 전혀 필요 없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조깅화 좋은 거 장만하려면 비쌀 수도 있지만, 어지간한 운동화면 5-6km 달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장비... 라면 이어폰 정도?

GPS 앱을 켜고 천천히 달렸습니다. 신나는 음악이라도 들으려고 갖고 나온 이어폰도 쓰지 않고 슬슬 달렸습니다. 제가 내딛는 발걸음 소리가 야심한 밤을 채웁니다. 지난번 폭우 때 푹 잠겼던 밤섬을 지나는데, 한강물에 안 쓸려간 풀벌레들이 '나 살아있다~!!!'라고 울어댑니다. 살아남은걸 보면 대단합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뒷길 벚꽃나무길에 접어드는데, 못 봤던 보트들이 몇 대 서 있네요. 현대 사회에서 부자들의 욕망 리스트 최상위 아이템 중 하나가 개인용 요트, 보트라는데(링크), 야심한 밤에 가로등 불 아래에서도 웅장한 자태를 자랑합니다. 저도 돈 많이 벌어서 저걸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뛰다 말고 사진도 남겼습니다.(SUPRA, 24,000만 원부터 $186,000~)

SUPRA boat, SL model인 듯...

'목표의 절반을 완성했습니다'라고 해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음악도 듣지 않고, 헥헥거리면서 달리기를 어언 30분. 암밴드에 차고 있는 휴대폰에서 8.15km의 절반을 뛰었다고 알려줍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10km를 뛸 수 있을 거 같은데, 지금이 딱 절반이라니까 이제 집으로 향하고 싶어 졌습니다. 8.15만 뛰면 되는데 그 이상을 뛰기 싫어진 걸까 싶네요.


서강대교 한가운데서 8.15km를 완성했습니다. 59분 51초 만이네요.

날이 습해서 그런지 온 몸에 땀이 뚝뚝 떨어집니다. 한강 바람도 별로 소용이 없네요.

서강대교에서 본 양화대교 방향, 새벽 3시

달리기를 멈추고 터덜터덜 돌아오면서, 집에 가면 뭘 할까... 남은 2주 동안 뭘 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달릴 때는 아무 생각 없다가, 이제는 좀 걸러진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슬쩍 잠도 옵니다. 집에서 샤워하고 잠들면 늦잠도 잘 수 있겠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반이네요

아들 침대에 슬쩍 누워서 잠을 청합니다. 아버지가 생전에 마라톤, 등산을 좋아하셨는데, 아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잠들어서 이를 뽀득뽀득 갈고 있는 아들을 보니 아버지의 마음이 그려집니다.


어릴 때 저는 그렇게 몸을 움직이는 걸 싫어하고, 또 산에 가는 것도 싫어하고, 달리기도 못하고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런 아들이라도 같이 가면 좋았던 아버지는 맛난 음식으로 저를 데리고 정말 가끔 산에 오르곤 했습니다. 자주 같이 다닐 걸. 말주변이 별로 없으셨던 아버지의 옆에 그냥 같이 걸어도, 무언 사이에 전해진 것들이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생각나고 짐작이 가는 걸 보면 어린 마음, 귀찮음에 아버지와 함께 하지 않았던 시간들은 모조리 후회로 남았습니다.


아들이 자라는 동안 저도 아버지처럼, 요놈과 여기저기 함께, 같이 하는 시간을 만들려도 부단히도 애를 쓸 것 같습니다. 아들이 저와는 다르게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고, 기꺼이 함께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점점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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