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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직장생활은 입사 전부터 시작된다.

회사는 누가 절실한지 이미 다 알고 있다. 누가 입사할지도...

by 버라이어티삶

정확한 타게팅. 취업은 람보의 전쟁이 아니다.

지금도 이런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력서, 입사지원서 수 백통을 갖고 있는 모든 회사에 발송하는 식으로 구직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으나 에너지를 허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2009년, 수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친한 친구들끼리 입사지원서를 몇 통까지 써 봤냐는 식의 자조 섞인 경쟁을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돌았다. 많은 기업들이 채용공고를 내는 졸업 시즌에는 도서관과 학교 일대의 커피숍, PC방은 지원서를 써 대는 학생들로 시험기간 보다 더 북적이곤 했다. 이 중에는 엑셀에 회사 명단을 죽 뽑아서 하나하나 체크 표시하면서 서류 제출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입사지원서에 지원하는 회사의 이름만 바꿔서 지원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그나마도 헷갈려서 회사 이름도 바꾸지 않고 그냥 보냈다는 서글픈 에피소드도 꽤 생겨났다.

이렇게 쏴대서 한두개 얻어 걸려도 곧 새로 시작하지... 나랑 안 맞아...


시작은 절실함과 확신에서부터

적어도 20년 넘게 살고, 10년 가까이 대학교를 다니면서 사회생활에 준하는 학교생활을 했다면, 지원 서류를 보는 인사 담당자들에게 정말 나는 이 회사를 원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단지 스펙을 위한 스펙들을 나열해 놓고서는 나는 이것도, 저것도, 다 잘할 수 있다고 공허하게 외쳐대는 사람의 한계는 뻔히 보인다. 이것 아니면 안 된다고 절실하게 매달리는 사람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서 있는 자세, 눈빛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절실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 길만이 내 길인데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확신에서 시작된다. 그런 확신은 경험과 독서,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다.


경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다른 4년제 학과의 복학생들과 달리 나는 군 제대 후에도 대학 생활이 4년이 더 남아 있었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결정하기 위한 나의 결심은 ‘할 수 있는 한 모든 선택지를 최대한 경험해 보고 아닌 것은 지워가는 rule out 방식으로 최선의 선택을 한다.’였다. 경험할 수 있는 최대한을 경험하고, 아닌 것을 지워나가면서 마지막에 남는 제일 적성에 맞는 일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었다.

소동물 병원, 대동물 병원, 마사회, 축협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찾아다녔다. 다른 친구들이 방학 때 돈을 벌기 위해서 과외를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동안 나는 필사적으로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졸업 후에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경험해 본 다음 제약회사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직장 생활은 입사 전부터 시작된다.

운 좋게 학교로 채용설명회를 온 회사가 나의 첫 직장이 된 영국계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이었다. 당시에 채용설명회가 열릴 것을 학교 취업정보센터를 통해 알게 되었다. 바로 GSK 인사부로 전화했다. 인사부 직원이 처음 통화하는 분임에도 전화기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내 소개를 했다. 채용설명회가 어떤 내용으로 진행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행사의 시간표와 내용을 파악하면서 인사담당자에게 나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채용설명회 당일에 내가 보일 수 있었던 최선은 촌스럽고 절박한 열정뿐이었다. 하지만, 그 열정이 그 뒤로 2년이 더 이어져 결국 GSK에 입사하게 되었다. 수의사로는 GSK에 두 번째로 입사하게 되었고, 학과에서는 최초의 외국계 제약회사의 영업직(MR; medical representative)이 된 것이다. 이 길을 선택하기 위한 경험들과 확신에서 나온 열정이 나를 어필하는 좋은 스토리가 되었다. 입사 후에 면접관이었던 분들은 하나 같이 뭔가 촌스럽지만 절박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원샷 원킬.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서 집중한다.

내가 썼던 입사지원서는 단 1개였다.

수백 개가 넘는 입사지원서를 써서 그중에 한 개라도 합격이 되면 넙죽 받아들이는 사람. 혹 운 좋아서 몇 개의 회사에서 합격이 되어버리면 아무 생각 없이 연봉 순서로 회사를 선택하는 사람. 절박한 마음으로 정말 여기 아니면 안 된다고 확신하고 회사에 지원한 사람. 어떤 사람이 직장생활에서 나래를 펼칠지는 뻔히 보이지 않은가?

입사 준비는 한 발만 맞으라며 기관총을 갈겨대는 람보의 전투가 아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싶은 직무를 제공할 회사를 정확하게 타겟팅해서 쏘는 스나이퍼의 전투이다.

직장생활은 입사 전부터 시작된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는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안다. 나도 모르는 자기를 회사에 던져 놓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시켜만 달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스스로 대해서 그 어떤 고민보다 깊은 고민에 고민을 하라. 고민이 깊을수록 자신에 대해서 잘 알게 된다.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회사에 어필하라. 그렇게 시작해야만 전쟁터 같은 회사생활을 그나마 즐겁고 열심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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