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

친구ㅣ직장인의 평일 연차ㅣ엄마의 배움

by 박수향

결혼을 하면서 고향과 꽤 멀리 떨어진 곳에 터를 잡게 되었다. 결혼 시기가 코로나 시작 시기와 겹치는 바람에 낯선 타지에 발이 꽁꽁 묶여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가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녹아들었을 무렵 만남이 그리웠던 사람들을 하나 둘 찾아 나섰고, 그들도 나를 위해 먼 타지까지 매번 발걸음을 해주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감사하고 귀했다.


어제는 정신없이 서울살이를 시작했을 때 유일한 동네 친구가 되어준 학교 후배이자 아끼는 동생이 귀한 발걸음을 해주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오빠, 언니, 동생 등 호칭의 벽 없이 "친구"라 칭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서울의 밤을 함께 했던 친구와 청주의 낮을 함께 하려니 설레는 마음이 배가 되는 듯 했다.


보다 여유로운 청주의 낮을 함께하기 위해 평일 연차를 내고 찾아온 친구 덕에 한산하기까지 했던 핫플투어를 할 수 있었다. 우리 아가가 "지금은 배가 안 고프니 마실 것부터 먹어요!" 하는 바람에 선 카페 후 식사로 계획을 세우고 데이트를 시작했다.


주말에는 발 들일 엄두도 못 내었던 커피 맛집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커피집 맞은편에 자리한 독립서점에서 맘에 드는 책도 하나씩 골랐다. 먼 길을 오면서도 나와 아가를 위한 선물을 준비한정성에 반만이라도 보답하고 싶어 친구가 고른 책을 선물했다. 좋아하는 친구를 보니 덩달아 행복했다.


매번 지나치며 점찍어둔 식당으로 향했다. 메뉴는 덮밥 종류 3-4가지로 단출한 편이었다. 시원한 생맥주도 함께 팔고 있었는데 친구가 애주가인 내 눈치를 살살 보는 것을 보니 평일 연차에 낮맥 한 잔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맥주 한 잔 마셔! 대리 만족되고 좋을 것 같다야." "진짜요? 저 그럼 맥주 마셔요? 500한 잔이요!"


각자 먹을 덮밥과 생맥 500cc가 테이블에 세팅되었다. '시원한 맥주 한잔에 덮밥, 얼마나 맛있을까.' 배를 쓰다듬으며 맥주 한 잔 하고픈 엄마를 달래주는 아가의 다독임을 느껴본다.


인내의 식사를 마치고 청주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수암골로 이동했다. 탁 트인 전망은 일말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기차역에 친구를 드롭해주고 집으로 가는 길, 싱글벙글 콧노래를 부르는데 신난 엄마를 보고 아가도 신이 났는지 "방방! 쿵쿵!" 팔과 다리를 흔들어댄다.


"엄마가 좋으니까 너도 좋구나?"

오늘 엄마는 귀한 발걸음으로부터 너와 함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하나 더 배운 것 같아.



매거진의 이전글지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