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ㅣ워라밸ㅣ투샷 커피
나는 커피를 정말 좋아한다. 커피를 좋아하게 된 계기를 떠올려보니 처음에는 좋아서 마신 것이 아니다.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마셨다. 작업치료사로 근무하며 대학원을 다녔고, 동시에 학회 임원 생활을 했다. 박사학위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추가로 외래 강의도 시작했다. 잠을 자지 않아야만 처리할 수 있는 업무량이었다.
직장에서 퇴근을 하면 매일 별다방으로 향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처음 할부로 지른 맥북과 별다방 커피 한 잔이면 찐으로 도시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비록 매일이 피곤한 도시 여자였지만 말이다.
커피는 항상 고민할 것도 없이 hot or ice 아메리카노였다. 톨 사이즈는 투샷, 그란데 사이즈는 원샷 더 추가, 벤티 사이즈는 투샷을 더 추가해서 마셨다. 틀에 갇혀 살기를 즐겼던 나의 20대에 내가 정한 별다방 주문 공식이었다.
창가 쪽 자리에 자리를 잡으면 최소 3시간은 눌러앉아 작업을 해야 했다. 작업의 양에 따라 컵 사이즈를 정했는데 학기 중에는 무조건 벤티 사이즈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한 번쯤 탈이 나는 것도 너무 당연스러운 일이었다. 육체적, 정신적인 큰 탈을 한 번씩 겪고서야 커피를 마시는 양과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정신적 탈을 겪고서는 거의 6개월 정도 커피를 마시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 더 편안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회복한 후 우유가 그득히 채워진 라떼로 커피를 다시 시작했다. 언제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일을 마치고 어느 카페를 지나가는데 원두향이 너무 고소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귀신에 홀린 듯 그 집에 들어가 "라떼에 샷 하나만 넣어주시고, 우유 많이 넣어주세요."를 외쳤다.
"꿀떡꿀떡"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아, 커피는 정말 맛있는 거였어.'
커피가 맛있게 느껴질 무렵 내 생활은 일과 여가의 밸런스가 완벽했던 것 같다. 잠을 자지 않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정말 맛있어서, 향이 좋아서 마시는 커피는 일말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퇴근 후 집 주변, 직장 주변 카페를 찾아다녔다. 맛이 좋다는 커피집은 다 찾아다닌 것 같다. 이후 '퇴근 후 카페 가기'는 떼려야 떼놓을 수 없는 나의 소중한 취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남편도 나 못지않게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나와 같다(남편과 나는 같은 학회의 임원으로 일을 했었다.).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먹는 것에 진심, 커피에 진심이었다. 데이트할 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뭐 먹을래?", "카페 어디 갈래?"이다.
밥을 먹고 핫한 카페를 갈 때 우리 부부는 가장 기분이 좋다. 적당히 부른 배를 툭툭 치며 맛있는 커피를 마시다 보면 행복이 별 게 있나 싶다. 남편과 나는 언젠가부터 플렛화이트를 가장 좋아하게 되어 어느 카페에 가든 플렛화이트가 있으면 시켜본다.
플렛화이트에는 기본 에스프레소 투샷이 들어가고 라떼보다 훨씬 적은 양의 우유가 들어간다. 에스프레소의 향과 맛이 진할수록, 우유가 쫀득쫀득할수록 맛있게 느껴진다.
아가가 생긴 이후로 한 번도 온전한 투샷 커피를 먹어본 적이 없다. 임산부의 하루 카페인 섭취량은 200mg까지 가능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냥 미안한 느낌이 들어서 플렛화이트나 라떼를 먹더라도 원샷만 넣거나 디카페인으로 변경한다. 커피 맛은 아쉽지만 마음 불편하게 마시는 커피보다는 훨씬 낫다 싶다.
출산을 하고, 모유수유가 끝나는 날 온전한 투샷 커피를 숨도 안 쉬고 꿀꺽꿀꺽 맛있게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멀게만 느껴졌던 그날도 곧 오겠구나. 곧이다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