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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수현 Jun 29. 2021

구찌가 없는 구찌 전시회

마케터의 공간여행, 럭셔리 브랜드 투어

*구찌의 2번째 글입니다.


럭셔리 브랜드는 아트(art)를 통해 스스로를 작품으로 전시합니다. 구찌도 여느 아트 마케팅처럼, 대림미술관에서 구찌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시회에서 구찌는 브랜드 로고도, 상품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전에 루이뷔통은 소장한 미술품을 4층 갤러리에 진열했죠. 같은 공간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브랜드가 노출되고 작품과 상품은 연결되었습니다.


상품없는 미술품만의 전시로 구찌는 또 한 번의 파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합니다. 과연 구찌는 브랜드를 드러내지 않고도 브랜드 확산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구찌의 아트 마케팅을 살펴봅니다.




왜 구찌는 대림미술관을 택했을까?


대림미술관은 구찌가 영감을 받은 구찌플레이스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동안 구찌플레이스로 유럽의 궁전이나 역사 깊은 미술관선택된 것을 보면 한국의 대림미술관은 꽤 이례적입니다. 대한민국에 내로라하는 미술관이 즐비한데 왜 구찌는 대림미술관을 선택했을까요?

      

줄 서서 들어가는 대림미술관 @ㅍㅍㅅㅅ 사진 발췌

인터넷에서 대림미술관을 검색하면 사립미술관의 성공사례로 글들이 꽤 올라와 있습니다. 크기도 작은데 20대에게 핫플레이스입니다. 2015년에 관람객 46만 명이 다녀갔는데 90% 이상이 20-30대였습니다. 같은 해 국립현대미술관이 15만 명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젊은 인파들이 다녀갔는지 상상이 가실 겁니다.


대림미술관은 어렵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이 예술이 되는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당시에는 상업적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젊은 층은 열광했죠. 미술관 사진 촬영을 허용해 SNS에 올리게 한 것도 대림미술관이 처음이었습니다. 게다가 온라인 회원가입을 하면 전시 기간 안에 재입장이 가능해서, 한 번에 다 볼 필요 없어 놀러 가듯 또 보며 곱씹을 수 있습니다.


대림미술관에 방문객이 많다 보니 미술관이 운영하는 '미술관 옆 카페'도 호황입니다. 대림미술관은 박물관에서 시작해 카페와 호텔까지 문화 사업을 확대해가고 있습니다.


구찌는 웹사이트에서 대림미술관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현대 미술과 디자인을 알리고 교류하면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국제적인 플랫폼


구찌는 일상에서 예술을 즐기는 대림미술관의 젊은이들과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구찌의 디자인 세계관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았습니다.


Gucci 웹사이트의 대림미술관 소개





구찌가 모은 10개의 예술공간


우리나라의 예술 공간은 어떤가요? 예술가들이 한 동네에 모여 문화를 만들면 젊은이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핫한 공간이 되면 땅값이 오르고 대기업 체인점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예술가들은 떠나가죠. 예술을 잃고 상업만 보이는 동네에 사람들의 발길이 시들해지고 대기업마저 들어오지 않게 되면, 비어있는 1층들이 눈에 띄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납니다.


구찌는 그렇게 예술을 지켜낸 시청각, 통의동 보안여관, 합정지구 등, 한국의 독립예술공간 10곳을 초대했습니다. 각각의 색다른 색깔을 대림미술관에 하나로 아카이빙 하면서 자율적이고 진보적인 유토피아를 꿈꾸었습니다.


구찌의 대림미술관 전시 사진들

구찌는 이 전시회를 언론 홍보 없이 오직 SNS와 매거진에서 전합니다. 구찌가 없는데도 사람들 사이에는 이미 <구찌 전시회>로 이름이 알려졌고, 브랜드에 대한 기대감을 가진 젊은 층의 입소문으로 전시회는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구찌는 대림미술관에 방문하는 힙한 젊은이들이 구찌의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 세계관을 경험하길 바랬습니다. 힙한 문화적 경험에 구찌의 상품은 필요 없었죠.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기존의 올드하고 전통적인 명품이 아니라 자유롭고 늘 진보하는 이미지로 구찌를 인식시키고 싶었습니다.


방문객과 인스타 해시태그로 보면 홍보 효과는 매우 컸습니다. 그만큼 구찌의 진보적인 브랜드 행동에 대해 시장에 어느 정도 기대감이 형성되어 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럼, 전시 공간에서의 고객 경험은 어땠는지 조금 더 들여다볼까요?





공간의 승패는 큐레이션에 달려있다


네이버 평점을 보면 호불호가 극명합니다. 대림미술관의 모토는 <일상을 향한 예술>이었지만, 그곳에 전시한 구찌의 작품은 어려웠다는 평가가 많았죠. 난해한 이 전시를 해석해주는 영상들도 유튜브에 올라와 있습니다.

"설명을 들어도 작품이 어려워 기억에 남지 않았다."
"현대미술은 역시 어렵게 느껴졌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려다 포기했다."
"B급 감성이 가득한 트렌디 영화"
"영상물은 현대미술에 어울리게 엄청 모호했다."
"도슨트가 없으면 전혀 알 수 없을 내용"


루이비통도 샤넬도 현대 미술을 전시했지만 반응이 이렇게 갈리진 않았습니다. 무엇이 달랐을까요?


저는 가장 큰 원인을 큐레이션(기획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각 독립공간이 고른 소재들은 굉장한 의미를 지녔지만 다소 실험적이라 대중성을 갖긴 어려웠죠. 이런 공간 10개가 모인 난해한 전시를 설명하려니 리플릿은 60페이지에 달했습니다. 장소를 옮길 때마다 리플릿을 뒤적여 읽어야 하는 번거로운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야말로 공부가 필요한 전시가 되었습니다.


이 기획은 프랑스의 유명한 큐레이터가 맡았습니다. 이 분이 한국의 예술 공간들을 잘 알 수 없으니 한국 작가와 콜라보해서 진행했습니다. 현대미술전을 작가가 직접 큐레이션 하는 것과 큐레이터가 작가의 세계관을 해석해서 전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습니다. 이미 전시 경험이 충분한 대림미술관의 큐레이터들과 왜 콜라보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지요.


대림미술관에서 매 전시마다 성공하는 손명민 큐레이터는 전시의 원칙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시를 기획할 때 관람객의 타깃층은 설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콘텐츠라는 요소에 중점을 두고 이를 어떻게 스토리텔링 할지를 연구합니다. 오래 리서치해온 팀원들은 마지막 순간에 직관을 사용합니다. 직원들에게 가슴으로 와닿는 감동, 말이 필요 없을 정도의 좋은 순간은 관객들에게도 좋은 전시로 이어지니까요."

- 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손명민 인터뷰 @탑클래스 발췌, 인터뷰 내용 간략히 수정


대림미술관 손석민 큐레이터의 성공한 대림미술관 전시회 @탑클래스


마케팅 트렌드를 보고 올해 유행색을 판단해 디자이너에게 이 색으로 디자인하라 넘겨주는 건 좋은 프로세스가 아닙니다. 디자이너는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만드는 민주주의자가 아니죠. 그들의 직관과 감성을 보장해주어야 좋은 디자인은 탄생합니다. 그럼에도 디자이너가 세상을 향해 영감을 펼칠 때 그 해석을 커뮤니케이션할 큐레이터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대중을 향한 이해와 공감에 익숙한 큐레이터는 우리에게 쉬운 언어로 작품을 이야기하고 말이 필요 없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번 구찌 전시회에서 두세 개의 오브제만 잘 선별해서 솜씨 좋은 큐레이션으로 풀어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오프라인 세계에서만 가능한 마케팅



오프라인 세계에만 가능한 마케팅이 있습니다. 바로,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설명하지 않아도 다가오는 감동, 좋은 영감을 이끌어내는 순간은 디지털(Digital)이 아닌 피지컬(Physical) 세계가 훨씬 잘할 수 있는 마케팅입니다. 그런 면에서 럭셔리 브랜드의 아트 마케팅을 투어해 보는 건 설명이 필요 없는 공간을 배우기 아주 좋은 학습 장소입니다.


컨셉팅 된 공간은 그 리플릿만 봐도 구성이 다릅니다. 컨셉은 명확하고 디자인은 심플하며 설명은 쉽습니다. 여기에 도슨트는 리플릿에 없는 스토리를 들려줍니다. 공간에서 요소들은 저마다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객은 이것들이 버무려진 경험을 360도 전방위로 하게 되죠.


사실 좋은 글은 쉬운 글이고, 좋은 디자인은 설명이 필요 없는 것 다 압니다만, 쉽게 쓰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 없고 보기만 해도 좋은 디자인은 한 번에 나오는 작업이 아니죠.


이번 구찌 전시회의 공간 경험은 아쉬웠지만, 상품을 없애버린 파격적 마케팅과 실험정신은 다른 브랜드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시몬스의 침대 없는 공간 마케팅은 구찌 없는 전시회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시몬스의 마케팅은 성공적이었고 지금도 공간 시리즈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다음에 숙면 시장에 대한 글을 쓰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럭셔리 브랜드의 투어는 구찌가 한남동에 낸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가옥>을 다녀와서 글을 맺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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