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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수현 Jul 11. 2021

리테일의 미래, 매장은 미디어다 (ft.구찌가옥 탐방)

마케터의 공간여행, 럭셔리 브랜드 투어

*구찌의 3번째 글입니다.


루이뷔통으로 시작한 럭셔리 브랜드의 아트 마케팅 투어가 에르메스에 들렀다 구찌에 이르렀습니다. Young & Rich의 고객경험 사례를 보려던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여기까지 왔군요.


구찌는 도전적인 행보들이 많아 살펴볼게 많았습니다. 타겟을 2030에 집중했고 디자인이 완전히 달라졌으며 앱을 출시하고 온라인 전용 상품에 DIY까지 굉장한 변화였죠. 변화의 중심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적극적이던 구찌가 이번엔 어느 명품보다 먼저 강북에 깃발을 꽂았습니다.


구찌가 이번에 오픈한 플래그십 매장의 이름은 <구찌가옥>입니다. 구찌가옥이 위치한 한남동 꼼데가르송길은 문화와 예술이 가득해 성수동과는 또 다른 색깔을 가졌죠. 동네는 600m밖에 안되지만 그 길에서 우연히 브랜드의 새로운 경험들을 만날 수 있어 마케터에게는 새로운 자극이 되는 동네 탐방이 되겠습니다.




구찌가옥, 매장이 아니라 집에 초청하


이름부터 매장이 아니라 <집>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집에 초청해서 환대하는 문화를 담으려고 공간의 이름에 "가옥"을 붙였다고 하죠. 외부는 조각가 박승모 작가와 협업해서 스틸와이어로 14겹의 입체적인 숲을 표현했고, 내부는 이태원의 활기 넘치는 팝 스타일의 감성을 메탈릭한 타일로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멋있는 가옥에서 구찌는 어떤 환대를 담아 고객경험을 완성했을까요?



구찌가옥 외관 @ 출처 디자인정글
내부 메탈릭 타일로 팝스타일의 감성을 표현 @ 출처 디자인정글


구찌가옥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유니폼을 입은 세련된 점원이 1층부터 4층까지 전체를 친절하게 설명했습니다. 건축과 인테리어를 작품 설명하는 도슨트처럼 설명했고, 각 층의 상품라인과 상품에 새겨진 의미까지 상세히 들을 수 있었죠. 어떤 상품이 구찌가옥에만 있는 라인업인지, 구찌의 도자기가 천국에서 자라는 식물을 모티프로 만들었다는 것부터 구찌의 맞춤 슈트 라인과 스니커즈 DIY 자수 문양의 인기라인까지 구경했습니다.


"구찌가옥은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백화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려고 합니다."
- 구찌가옥 점원의 설명


친절한 점원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의 속도에 맞추어 돌아 돌아 어느새 우리는 1층에 도착했습니다. 4개 층을 다 도는데 15분 정도 걸렸습니다.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구경하고 싶단 말이 쏘옥 들어갔습니다. 무언가 찜찜합니다. 분명 예쁜 집인데 보다만 이 느낌은 뭘까? 분명 친절한데 서둘러 나온 이 느낌은 뭘까?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했습니다. 점원은 미안해하며 설명했습니다. 이전에 사진을 허용했다가 구찌가 말하지 않은 방향으로 고객들이 SNS에 올리면 통제가 안되어 찍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굉장히 이상했습니다. SNS에 올린 개인의 판단과 표현을 왜 통제할까요? 카피 제품 때문일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구찌가 디자인에 영감을 준 장소로 소개한 대림미술관은 최초로 미술품을 SNS에 맘껏 올리도록 개방한 곳이었죠.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미술작품도 SNS에 개방적인데 젊은 세대를 타겟팅하는 구찌가 몸을 사리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집처럼 맞이하고 백화점에서 느낄 수 없는 경험을 주려는 구찌가옥에서 저는 환대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진이 아쉬워 다른 분들의 블로그를 참고했는데 너무 빨리 돌아보아 아쉽다는 분도 더러 있고, 어떤 원은 촬영이 되고 어떤 원은 안된다고 해서 오퍼레이션의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보입니다.





디지털 전환 시대리테일 경험


디지털 전환이 빠를수록 오히려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대는 대면 커뮤니케이션의 욕구는 더 강해집니다. 특히 하이엔드 브랜드일수록 브랜드의 기대치가 높아 리테일 경험이 훨씬 민감하게 작용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디지털에서 상상했던 브랜드는 물리적 공간(Physical)에서 더 드라마틱한 경험을 기대하게 되죠. 어떤 브랜드는 디지털에서 고객에게 잔뜩 기대감을 주고는 매장에서 실망을 주기도 합니다."

- 왜 리테일 경험이 럭셔리 브랜드에서 중요한가 / 대니얼 레인저 교수 / Pepperdine University in Malibu / 출처 https://jingdaily.com/retail-experience-matter-luxury-brands/


요즘처럼 상품의 차별이 어려운 시대에는 브랜드가 주는 감성적 가치가 차별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감성적 가치는 고객이 만나는 브랜드의 모든 접점에서 작용합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영역이 분명했던 마케팅과 세일즈에서 둘 사이를 넘나드는 고객경험(Consumer eXperience)이 중요해지는 것이죠. 매장은 브랜드가 고객을 실제로 만나는 첫 접점(touch point)이라 그 의의가 더 큽니다. 브랜드들이 이 접점을 만들어내려고 오프라인에 자꾸 고객을 만나러 나옵니다. 매장은 이제 더 이상 거래 장소가 아닌 브랜드를 경험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대니얼 교수는 리테일에서의 성공적인 브랜드 경험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막 매장을 나왔을 때 그 브랜드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는가?


고객의 브랜드 여정은 디지털에서 시작해서, 리테일에서 그 경험을 더 강화하고 확정(confirm)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연결선상에서 브랜드의 메시지는 동일하면서 반드시 다르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브랜드가 고객을 만나는 맥락(Context)과 교감(interact)이 다르기 때문이죠.


"오프라인 쇼핑 공간에서는 ‘나’와 ‘물건’과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오프라인 상업 공간에는 물건을 사고, 사람 구경하고 ‘우리’를 경험하는 행위가 있습니다."

-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 조선일보  2021.01.29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에도 구경하는 사람들의 방식이나 매장의 동선, 세일즈와의 대화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런 변화가 가능하려면 본질적인 질문, 디지털 시대에서 매장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정의에 따라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멋진 외관과 셀럽의 초대보다 더 선행되어야 할 요소인 것이죠.





매장은 미디어다


리테일이 전부 디지털로 바뀌고 오프라인 매장은 사라질거란 예측이 물 건너 간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는 물리적 세계에 살면서 디지털을 경험하는 <반 디지털 상태(Semi-Digital State)>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매장의 역할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요?


"매장은 점점 강력하고 측정 가능한 형태의 미디어 채널로 진일보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의 한 채널로서, 브랜드는 매장의 물리적 콘텐츠(Physical Contents)로 고객을 참여(engage)시키고 브랜드 생태계로 끌어들이게 됩니다."

- 더그 스테판 / 리테일 컨설팅 CEO / 출처 https://jingdaily.com/retail-hacks-luxury-stores-2021-nike-starbucks/


미디어로서의 매장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해야 합니다. 그 제안의 형태로 상품이 전시되고 고객 동선이 정리되며 디지털 기술(AR, AI, 라이브 스트리밍 등)이 그 콘텐츠를 충분히 경험 또는 확산하도록 서포트해야 하는 것이죠. 또한 미디어 채널로써 매장의 중요 자산인 세일즈의 역할도 다시 점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기념비적인 변화에 따라 매장에는 새로운 KPI가 부여됩니다. 바로, 미디어로서의 가치(Media Value)입니다.

(*미디어 가치 = 고객 방문수  × 노출당 단가 → 매장의 NPS로 수정 / 더그 스테판, 리테일 컨설팅 CEO)


구찌가옥으로 돌아가 볼까요?

점원도 사실 상품 소개하랴 디자인 설명하랴 도슨트와 세일즈 두 가지 역할에 바빴습니다.


도슨트를 세일즈 점원과 분리해서 따로 진행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코로나로 5명 이상 묶어 도슨트를 진행하지 못하니 한정된 세일즈 인원으로 소규모 도슨트를 자주 진행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사실 동선만 바꿔주어도 고객경험은 크게 바뀝니다. 점원이 지금처럼 1층 → 4층 → 3층 → 2층 → 1층의 동선으로 안내하면 고객은 다음 액션에 1층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1층 → 2층 → 3층 → 4층으로 설명하고 4층에서 계단을 통해 자유롭게 내려가도록 한다면, 방금 들은 멋진 설명을 마음에 담은 고객이 메탈릭 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나만의 경험을 시작하는 것이죠. 고객의 취향을 저격해 라인업은 몇 가지만 핀포인팅해 설명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물론 1:1 밀착 세일즈가 아닌 자유 관광이 정책적으로 허락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엄청난 비용으로 디지털 광고를 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고객을 발굴하고 내 매장에 한 명이라도 더 방문시키려는 데 있습니다. 광고 노출 대비 클릭한 고객은 아주 미미하고 그 클릭한 고객 대비 몸을 움직여주는 고객은 더 적습니다. 투입 대비 어렵게 얻은 고객이 매장에서 실컷 놀면서 브랜드를 마음껏 경험하고 돌아가야 브랜드 여정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것이죠.


이 여정의 가장 최전방에 있는 전략기지, 매장에서 이전에는 지갑을 열 만한 고객을 판단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쇼핑이 놀이가 된 경험(eXperience)의 시대에는 구경하는 고객도 절대 포기해선 안 되는 데이터(자산)가 되었습니다. 잠재 상태의 고객은 마음껏 경험하도록 밀어냈다가 다음에 어떤 이벤트로든 당기는 것이 가능하니까요. 일단 한번 매장에서 안면을 튼 고객이라면 말이죠. 그 끈을 놓지 않고 끈기 있게 브랜드 생태계로 안내하는 것이 고객경험의 핵심입니다.


다음에는 구찌 없는 구찌 전시회에 영향을 받아 침대없는 팝업스토어를 진행 중인 시몬스의 공간으로 동네 마실을 다녀올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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