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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수현 Jul 15. 2021

성공하는 공간 경험의 비밀, 동선 (ft. 시몬스)

마케터의 공간여행, 시몬스 침대

공간 마케팅 프로젝트를 하던 어느 날, 클라이언트가 시몬스 테라스를 소개했습니다. 잘 만들어진 공간 사례를 모으던 터라 즉시 마케팅 투어를 계획했고 공간 디자인에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건축가 P를 동참시켰습니다.


여러 공간을 둘러보면 촉이 좀 생깁니다. 공간의 컨셉팅을 건축가가 했는지 마케터가 했는지에 따라 공간의 느낌이 달라 답 맞추는 재미가 좀 있습니다. 시몬스 테라스는 내부 마케팅팀이 공간을 직접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설계했습니다.


 


공간의 극적인 스토리요소, 스페이스텔링


우선 온라인의 경험구조를 생각해볼까요?

웹사이트에서는 상단의 내비게이션 바를 통해 원하는 정보에 직접 접근이 가능합니다. 이 페이지에서 저 페이지로 점핑하는데 제약도 없고 시간도 걸리지 않죠. 페이지 형태의 온라인에서 브랜드는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한 페이지 안에 담아냅니다. 여러 페이지로 경험구조를 짤 수도 있지만, 페이지를 넘나들수록 이탈이 발생합니다. 고객이 반드시 다음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보장이 없으니 한 페이지에 집중하면서 다음 페이지로 호기심을 유발하는 경험 전략이 전개됩니다.


반면, 공간의 경험구조는 어떨까요?

사람이 시공간을 점핑하는 초능력이 없는 이상, 이 공간에 가야 저 공간에 비로소 닿을 수 있습니다. 공간은 보통 사람보다 큰 사이즈이고, 이것을 사람이 보고 느끼는 크기 단위의 휴먼스케일(Human Scale)로 쪼개어 순서에 맞게 스토리를 정렬합니다. 이것을 동선이라 부릅니다. 동선은 사람이 움직이는 길을 뜻하지만, 잘 기획된 길에서 우리는 의도된 스토리를 짜임새 있게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브랜드는 의도를 가지고 공간의 모양과 동선에 변화를 니다.

좁거나 넓은 복도,

낮거나 높은 천정,

오르고 내리는 동안의 시선 변화,

탁 트이는 공간에서의 시야,

적절한 형태의 읽고 보고 듣는 콘텐츠.

이런 요소들을 위계와 순서에 따라 배치하면 한 편의 극적인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오프라인 공간의 매력이죠.


온라인의 페이지를 넘나들면서 이탈이 발생하듯, 공간에도 시선을 빼앗길만한 요소가 다분합니다. 한 번 지나치면 다시 돌아가기 어려우니 공간에 담는 이야기가 심플할수록 뾰족해집니다.  


"공간이 빌 공(空)과 사이 간(間)이 합쳐진 단어쟎아요. 비어있는 것도 공간의 구성 요소인 것이죠. 공간에서는 채우지 않은 것도, 비워져 있는 것도 모두 의도한 디자인입니다." - 건축가 P


건축가 P의 이야기를 마케터의 관점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브랜드가 말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할수록 <의도된 빈 공간>을 허용할 힘이 생깁니다. 결국 온라인의 페이지건 오프라인의 공간이건 이 모든 것은 브랜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매체니까요.







시몬스 테라스의 동선에는 다 이유가 있다


건물 한쪽에서 시작한 동선은 돌아 돌아 어느덧 이쪽 편 건물에서 끝이 납니다. 공간은 작아 보였는데 경험이 꽤 알차서 실제보다 더 넓게 느껴졌습니다.


"동선을 설계할 때 반층 구조를 사용하면 여기가 1층인지 2층인지 가늠이 안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공간을 더 길고 넓게 사용할 수 있죠." - 건축가 P


저도 공간 프로젝트의 경험 전략을 짤 때 각 경험의 길이를 짧고 촘촘하게 가져가는 편입니다. 실제보다 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죠.


시몬스의 의도를 담은 동선은 이렇게 전개됩니다.


아티스트 전시공간  → 매트리스 랩  → 헤리티지 앨리  → 호텔  → 테라스  → 식물정원 카페


1. 감성을 말랑하게 하는 아티스트 전시공간

시몬스는 입구 초입에 라이프스타일을 저격하는 아트웤 전시공간을 제일 먼저 보여줍니다. 다른 공간의 셋팅은 매번 바꿀 수 없는 고정 요소지만, 이 공간만큼은 다른 아티스트와 콜라보하며 주제를 바꿀 수 있는 변주 가능한 공간이죠. 이 공간은 입소문으로 신규 고객을 확보할 뿐 아니라, 재방문도 유도하는 효자 공간입니다.

왼쪽 여행컨셉, 오른쪽 장 줄리앙 전시 / 출처 중앙일보


2. 기술 연구소, 매트리스 랩

아트공간을 나와 메인 공간의 문을 열었습니다. 시몬스는 브랜드 이야기의 첫 포문을 기술로 열고 있습니다. 어두운 공간에 기술력을 뽐내는 스토리를 집중 조명합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직접적인 말은 없지만, 박물관의 정보들은 하나같이 디테일하죠. 진짜 교육하겠단 목적보다는 '매트리스에 이렇게 많은 기술이 필요했어?' '생각보다 복잡하니 비쌀만하군' 이란 과학의 느낌적 느낌과 프리미엄의 당위성을 담아갈 수 있습니다.

매트리스랩 / 출처 시몬스


3. 150년의 역사박물관, 헤리티지 앨리

기술의 문을 나와 감성의 공간으로 들어섭니다. 레트로 컨셉의 밝은 공간에 150년의 광고 역사가 펼쳐집니다. 그 시대의 광고 포스터와 CF 영상이 꽤 감각적이라 '150년간 세련된 브랜드였군'이라는 프리미엄의 긴 역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헤리티지 앨리 / 출처 시몬스



4. 최상위 모델 쇼룸, 호텔

방금 기술력도 봤고 긴 역사의 프리미엄함을 보고 온 고객에게 시몬스는 '현재의 프리미엄'을 보여줍니다. 순서 상 하이엔드 상품을 보여주는 것이 뽐뿌질 하기에 딱 맞는 플로우 같죠? 제일 최상 위 모델들을 호텔 쇼룸 형태로 전시했습니다. 그 옆에 작은 태그로 가격표가 있습니다. 일부러 보여주려는 위치도 아니지만 안 보이지도 않는 위치이죠.

호텔 컨셉의 쇼룸


5. 테라스, 매트리스 전시공간

방금 프리미엄 모델에 뽐뿌질 가득 담은 고객에게 매트리스 라인업을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점원은 화장품 브랜드 키엘(Kiel)처럼 약사 컨셉의 유니폼을 입어 전문가 느낌이 풍깁니다. 아무 데나 눕고 앉아도 부르기 전까진 찾아오지도 않아 여기저기 충분히 놀며 사진에 담아갈 수 있습니다.




시몬스 공간 설계에 가장 감탄한 것은 <경험의 디테일>이었습니다. 키오스크는 나의 잠자는 타입에 따라 매트리스를 추천합니다. 어떤 곳은 숙면에 대한 꿀팁이 배치되어 있고, 군데군데 세련된 디자인의 프로모션 X배너가 부담스럽지 않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아기자기하게 볼것들이 솔찬합니다.





6. 식물원 컨셉의 카페

박물관에도 미술관에도 항상 공간의 마지막에는 식음료가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브랜드 생산자와 사용자의 경험은 날실이다. 그리고 사용자와 사용자 간의 브랜드 경험은 씨실이다. 이런 날실과 씨실이 직조되어 '브랜드 경험'을 하게 된다.

- 유니타스 브랜드 <나는 세상을 브랜드로 이해한다>


사실 이렇게 대단한 의미를 두고 카페를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처음 앞 공간들은 브랜드가 고객과 소통하는 공간이었다면, 마지막 카페만큼은 함께 온 사람끼리 소통하는 공간을 의도했다고 말이죠. 마지막 문을 나서기 전, 이곳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씨실의 경험 한 줄기를 더하는 것, 저는 이것이 날실과 씨실로 브랜드 경험을 완성하기를 바라는 의도된 설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제품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 보였다면 어떨까?



건축가 P와 각자의 인사이트를 공유하면서 한 가지 공통적인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왜 침대는 항상 침실을 배경으로 제품이 나열되어 있을까? 처음엔 호텔 쇼룸에서 '와우' 하다가도 마지막 본격적인 매트리스 공간에서는 모두 같은 침대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처음엔 차이가 느껴져도 계속 시향 하면 감각이 무뎌지는 향수처럼 말이죠.


상품의 전시에 정보가 아닌 스토리가 담겨야 경험과 상상이 풍부해집니다. 오래 구경할 수 있고 기억에도 남죠. 이곳은 매장이 아닌 복합 문화공간의 쇼룸이니 매출 압박 없이 시몬스가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극적으로 보여주기에 부담이 없을 듯 합니다. 이 넓은 공간에 침대가 단 하나뿐이라도 얼마든지 상품의 개성에 다양한 스타일의 욕망을 담아 전시할 수 있는 것이죠.

이케아 쇼룸 / 출처 인터넷


이케아의 라이프스타일 전시는 각 방마다 돌아보는 내내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이보다 더 잘 전시된 공간들도 많아 발견하면 또 글을 써보겠습니다. 혹시 추천할만한 곳이 있다면 댓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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