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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수현 May 26. 2022

크리에이터가 기획한 장례식 - 2편

이어령 선생님의 49재 장예전

*1편에서는 선생님의 물건에 담긴 에피소드와 글에 담긴 생각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물건에 담긴 에피소드와 그가 남긴 생각들을 살피다 보니, 이 분만큼 이 세상을 농밀하게 살 다 간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암을 통보받은 이후 오히려 삶이 더 농밀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눈이 내리면
내년에 꽃을 또 볼 수 있을까

그럴 때 비로소 꽃이
내 가슴속에

오늘이 전부라는 걸 알았을 때
삶이 가장 농밀해진다

이어령


그가 원고지를 넘어 바깥 공간까지 상상력을 확장시켜간 작품이 다음 전시실에서 계속되었습니다.






침묵을 디자인하다



깜깜한 암실 속에 빔 프로젝터가 어느 소년을 비춥니다. 그 소년은 끝도 없이 굴렁쇠를 굴립니다. 이 소년의 움직임을 보는 나는 어느새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침묵의 1분을 지켜보는 관중이 되었습니다.


출처 개막식 동영상 사진 캡처


88 올림픽의 유명한 <굴렁쇠 소년>은 이어령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단원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박수소리가 잦아들 때 즈음 작고 어린 소년 하나가 굴렁쇠를 굴리기 시작합니다. 이 아이는 독일 바덴바덴에서 서울이 개최지로 선정된 그날 태어난 아이였다고 하죠. 아이의 발걸음으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가는 그 1분간 전 세계는 숨을 죽이고 아이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이 정적을 <1분간의 시(時)>라고 표현했습니다.


정적을 들려주고 보여주자
이 침묵을 보여주자
인류들이 가장 못한 게 침묵이다

2015년 KBS <이어령의 100년 서재>에서 굴렁쇠 소년을 회고하며


그전까지 냉전의 여파로 올림픽에는 한쪽 진영만 참석하던 분위기였습니다. 서울 올림픽에 와서야 양 쪽 진영이 모두 참가를 하게 되면서 '화합'이 주는 의미가 꽤 컸습니다. 88 올림픽의 개획식과 폐막식을 총괄 기획한 이어령 선생님은 이것을 '벽을 넘어서'라는 은유가 가득한 구호로 탄생시켰습니다.

사진 출처 필자



사람에게서 가장 큰 힘은 상상력이라 말해온 이어령 선생님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문학하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하기도 하는데, 원고지에 쓰던 것을 잠실 주경기장으로 옮긴 것뿐이다






사람들의 기억으로 그를 추억하다


다음 공간에는 다큐멘터리 <고맙습니다 이어령>이 재생되고 있습니다. 어두운 공간에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영상이 잔잔히 흘러나왔죠.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 그와 이어진 삶의 조각들을 우리에게 전했습니다.


사진 출처 <고맙습니다 이어령> 캡처


나는 그중에서 이어령 선생님의 아들이 전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돌아가시기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관찰하는 것 같았습니다. 허공을 아주 또렷하게 응시하셨어요. 마치 아주 재미있는 걸 지켜보시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고(故) 이어령 선생의 아들 이승무(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이어령 선생님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과 죽음을 두 눈으로 끝까지 응시하였기에, 아들 이승무 교수는 마지막에 눈을 감겨드려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아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담겼습니다.

세상의 움직임을 쫓느라 분주한 나의 눈동자 앞에, 인생을 깊게 살다 간 어느 한 노인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자기 자신을 응시합니다. 삶뿐 아니라 죽음까지 한결같이, 끝까지, 또렷하게.






메멘토 모리, 생명과 죽음은 서로 등을 대고 있다



전시의 끝에서 딱 선생님 다운 공간을 만났습니다.


하얀 국화꽃에 둘러싸인 영정 사진과 향 냄새 가득한 추모 공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집니다. 김아타 작가가 찍은 압도하는 크기의 까만 전신사진은 빠알간 매화나무와 대조를 이뤘습니다. 아이패드에는 (전류가 흐르는 한) 절대 꺼지지 않을 영원한 촛불이 타오릅니다. 그리고 나전 칠예 거장 전용복 칠예가의 옻칠함에는 선생님의 머리카락 등 DNA가 담겨 있었죠.

사진 출처 필자

까만 사진과 빠알간 홍매화의 대조는 이어령 선생님이 늘 얘기하신 메멘토 모리, 생명과 죽음은 등을 맞대고 있음을 기억한 예술가들의 표현입니다. 그 아래의 성경책은 전도서를 펼치고 있습니다.


나는 어떤 문구에 눈이 갔습니다.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사진 출처 필자
사진 출처 필자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북악산 자락이 보이는 그의 정원에 도착했습니다. 섬유작가의 바느질이 원고지와 자필 문구를 수 놓았습니다. 가든 디자이너가 만든 이끼 정원 위에 조문객들의 헌사가 휘날립니다.


나는 선생님의 집 정원에서 따뜻한 우롱차를 마시며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나의 탄생부터 함께 한 '나의 죽음'을 직시할 수 있다면, 오늘 나의 삶은 더 농밀하겠구나. 유난히 오늘, 북악산의 초록이 더욱 찬란하게 반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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