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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Jul 08. 2024

언젠가 있을 새롬이와의  이별에 대처하는 법


장마철이라 하루종일 비가 와도 새롬이와의 산책은 거르지 않는다.

장마철 산책은 하늘과의 치열한 눈치 싸움이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물폭탄 시간을 피해 잠시 비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면 빈틈을 노려 잽싸게 대형 우산을 펼쳐 들고 두 번 고민할 새도 없이 후딱 나가야 한다.


비가 와도 새롬이 산책이 가능한 이유는 산책이라기보다 아장아장 보행 훈련에 가깝기 때문이다.

새롬이가 힘을 내어 아주 빨리 걷는다 해도 내가 펼쳐든 우산 밖을 벗어날 일은 없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매일 걷는 연습을 잠깐이라도 하는 것이 새롬이의 삶의 질을 지켜줄 거라 믿는다.


씩씩이도 그랬지만, 새롬이 역시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날까지, 기력이 허락된다면 산책을 시켜 줄 예정이다.

 

녀석이 가장 좋아했던 산책을 끝까지 함께해 주는 것이 내가 새롬이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사랑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상대가 원하는 것을 기꺼이 함께 해주는 것이다.

'기꺼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가끔씩 내 몸이 피곤하거나, 귀찮거나, 꾀가 나거나 하는 등의 상황적 여건은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내 의지이다.


나의 애로 사항이나 불편감을 이겨내고도 남을 만큼 흔쾌히, 기꺼이 매일같이 함께 했던 것이 녀석들과의 '산책'시간이었다.


새롬이가 눈이 안 보이고, 걷는 것이 불편하고, 고령으로 모든 감각이 퇴 했어도 엄마와의 산책 루틴은 견생 내내 세포 깊숙이 새겨져 있는 습관일 테다. 어제도 비가 소강상태로 접어들기만 저녁 내 기다리며 집안일을 하는데 새롬이가 바깥공기를 마시려는 듯 현관으로 통하는 중문에 코를 박고 연신 킁킁댄다. 아마도 녀석의 생체 시계가 산책 타이밍이 지났음을 알린 듯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영화 속 대사 한마디가 떠올랐다.

"너도 다 생각이 있구나"

 그렇다. 새롬이도 다 생각이 있었다.


이럴 때는 참을 만큼 참았다는 녀석의 신호이기에, 비위를 거슬리지 않도록 가급적 빨리 산책을 나가줘야 한다. 이때 녀석의 편치 않은 심사를 무시하고 계속 집안일을 했다가는 평소 실내 배변하는 장소가 아닌 엉뚱한 장소에 대량 똥오줌을 살포하며 시위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새롬이는 야밤 산책을 다녀와 피곤했는지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내 곁에서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곤히 잠든 녀석이 애처롭고 안쓰러워 한참을 바라보다 쓰다 듬다를 반복하며 문득 언제까지 녀석과 산책을 다닐 수 있을까 싶었다. 사실 몸도 성치 않은 14살 노견과 함께하는 만큼 이 생각은 머릿속에 항상 머물러있다.


우리 삶은 이별의 연속이다.

씩씩이를 떠나보낸 지도 이제 122일째 접어들었다.

오래간만에 핸드폰 사진함을 열어 씩씩이의 건강했던 모습이 담긴 영상과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사진 속 귀여운 녀석의 모습을 보며 '이때만 해도 참 건강했었네!' 하며 촬영한 날짜를 찾아보니 씩씩이가 떠나기 딱 1년 전에 찍었던 사진이었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날로부터 딱 1년 후 녀석과 영원한 이별을 맞게 될 줄은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렇듯 이별은 사전 예고도 없이, 화면 전환 시간도 없이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이때만 해도 앞으로도 계속 신나게 산책 다니고, 맛있는 간식도 밥도 잘 먹으며, 우리 집 귀염둥이 막내아들로 마냥 공기처럼 내 곁에 있어줄 줄만 알았다. 그랬던 녀석이 불과 몇 달 후에 지독한 암에 걸려 지난한 투병 과정을 겪고 딱 1년 후 내 곁을 떠났다.


사실 이별의 순간을 미리 알고 있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이별의 순간을 알고 있다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순간순간 더 열심히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매일 새롬이의 모습을 내 두 눈에, 내 기억에, 내 마음에 꾹꾹 눌러 담는다.

언젠가 이별의 순간을 마주한다는 가정하에 그나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순간순간 녀석의 모습을 내 장기 기억 속에 새기는 것이다.

기억조차 시간을 이기지 못해 망각되겠지만 그나마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아무리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어놓아도 그 순간만 핸드폰에 남을 뿐 곧바로 '과거'로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다.


사랑하는 대상과의 이별은 절대 익숙할 수 없다.

또 이별에 대한 마음의 준비 또한 가능하지 않음을, 그저 속수무책으로 겪어내야만 함을 씩씩이와의 이별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새롬이와 함께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겠다.

삶은 지금 순간순간만 있을 뿐이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녀석을 무릎에 앉혀두고 한참 쓰다듬어 줘야겠다.

(물론 그전에 새롬이 저녁 밥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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