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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Jul 22. 2024

새롬이를 통해 연습하는 겸손

아침에 일어나니 새롬이가 옆에 없다.

녀석은 없는데 이상하게 녀석의 응가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혹시나 싶어 이부자리를 살펴보니 녀석이 잤던 자리에 엄지손톱만 한 대변이 이불 위에 찌그러져 있다. 아마도 대변이 자기도 모르게 새어 나왔나 보다.


요즘 새롬이는 작년에 비해 확연히 건강이 안 좋다.

산책을 나가도 뒷다리 힘이 없는지 다리가 파르르 떨린다. 작년에 비해 오래 걷지 못하고, 소변볼 때 뒷다리 하나 들 힘이 없는지 쪼그린 채 소변을 본다. 또 대변을 보며 힘을 주다 뒷다리에 힘이 풀려 대변 위로 주저앉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럼에도 산책을 해야 뒷다리 근력이 유지될 것 같아 100미터를 걷더라도 일단 나간다.

또 기분 좋은 실외배변을 위해서라도 산책은 필수다.


아침부터 이불빨래를 돌리고, 새롬이를 다시 유심히 살핀다.

14살이라도 건강한 아이들은 건강하던데 우리 새롬이는 왜 이리 아픈 곳이 많은지 속이 상한다.

반려견의 평균수명이 12.5세라는데 평균 수명은 넘겼으니 감사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아픈 녀석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인 건 식욕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몸이 아프면 음식부터 못 먹을 테니 새롬이의 식탐은 건강을 파악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아침부터 배가 고픈지 혼자 일찍 일어나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녀석을 보면 주말이라도 늦잠을 잘 수가 없다. 시츄가 원래 식탐이 많은 종이기도 하지만 새롬이가 앓고 있는 sard라는 안구 희귀 질환이 식탐을 더 높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새롬이는 나이가 들면서 더 자주 배꼽시계가 울려대는 것 같다. 그렇다고 간식을 마음껏 줄 수도 없는 것이 살이 찌면 또 척추에 무리가 가 디스크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이고 동물이고 나이가 들면서 몸이 아픈 것은 자연의 순리겠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 서글픈 건 어쩔 수 없다.

새롬이의 전성기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나로서는 지금 새롬이 상태를 보면 솔직히 기가 막힌다.

그렇게 건강하던 녀석이 이제 100m  산책도 버거워하는 가여운 몸이 되어버렸다니...


나이 드니 주변에서 부모님이 편찮으시다는 지인들의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지인분 어머님께서 주말 아침에 옷을 갈아입는 중 원피스 자락을 밟는 바람에 걸려 넘어지셔서 척추 압박골절로 입원하셨다고 한다. 어릴 때 넘어지면 가벼운 찰과상으로 끝나지만 나이 들어 넘어지면 찰과상은 고려할 수준도 못된다. 골다공증에 골절이 흔한 시기이고 다른 부위 골절은 그런대로 다행이지만 고관절이라도 골절되는 날이면 정말 큰일이다. 지인 어머님 이야기를 듣고 혼자 계시는 엄마 걱정에 지인이 추천해 주신 안전바를 집안 곳곳에 설치해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부모님들 편찮으신 얘기나 바로 눈앞에서 나이 들어 아픈 새롬이를 볼 때면 문득 나이 듦이 두려워진다.

그렇게 부모님 세대가 떠나면 이제는 머지않아 내 차례가 올 것 같다.

몸이 건강한 지금도 별다른 이유 없이 마음이 복닥거려 힘들 때가 있는데 몸까지 아파 제대로 의사표현조차 못하는 때가 오면 얼마나 갑갑하고 서러울까 싶다.


그래서 건강한 지금부터라도 겸손을 연습해야겠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는 것도 아니지만 몸이 아프다고 쉽사리 변할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나이 들어 몸이 아프면 누군가에게 아기처럼 의탁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의지해야 하는 순간에도 내 고집대로 환경이나 상황을 조절하려 하거나,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마저 신뢰하지 못한다면 몸도 마음도 두배로 괴로울게 뻔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타인을 신뢰하는 마음도 겸손이다.

타인을 신뢰할 수 있으려면 나 역시 타인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눈치 보지 않고 온전히 기댈 수 있고 서로 돌보아줄 수 있는 마음속 따뜻한 여유 공간 한 편은 남겨두고 싶다.


또 겸손은 마음뿐 아니라 내 몸에도 해당된다.

나이 들면서 몸 또한 젊을 때 같지 않음을 인정하고, 시간에 쫓겨 서두르기보다 천천히 움직여 느림보가 되는 편을 선택해야겠다.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시간은 어차피 한정되어 있는데 몇 발 앞서가는 게 사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이나 그 뒤를 따라가는 나나 아차피 종착지는 한 곳일 텐데 말이다.


내 돌봄이 필요한 대상보다 지금 내가 좀 더 건강한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손 빌리지 않고 내 손으로 아픈 새롬이를 돌볼 수 있고 엄마도 돌볼 수 있으니 이 점 또한 감사한 일이다. 새롬이가 눈이 안 보임에도 기저귀 착용 없이 스스로 대소변을 가릴 있는 것도 너무 감사하다.


현재를 아쉬워만 하기보다 아쉬움 속에서 감사함을 찾는 것도 겸손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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