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녘에 산책을 나가도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에 이제 15살을 앞둔 새롬이가 연신 헥헥거리느라 한 발짝 떼기도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요즘 날이 너무 더워 긴 시간 산책은 무리인지라 산책시간을 확 줄이는 대신, 횟수를 하루 2회로 늘려 새벽녘에 1차 산책을 하고, 밤 9시 이후에 2차 산책을 나가고 있다. 바로 변화된 산책 루틴을 눈치챈 녀석은 집안에서 실내 배변을 하지 않고 참고 있는 눈치다. 엄마의 움직임이 일으키는 변화된 공기의 흐름을 털끝에서 감지하는지 산책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면 기막히게 알아채고 바로 집중 모드가 된다.
그렇게 아침 산책을 다녀온 녀석은 간식을 먹고 나서 이제 볼 일 다 보았다는 듯 방으로 들어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다.
가끔 노화로 인해 대부분의 감각이 쇠퇴 하고, 눈도 보이지 않는 새롬이에게 견생의 낙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껌딱지처럼 엄마 몸 위에(특히 다리 위, 꿀렁꿀렁한 배 위) 올라와 있던 녀석이 나이가 드니 내 무릎 위에 오래 올라와 있으려 하지 않는다. 허리가 아파서 인지, 만사가 귀찮아진 탓인지 모르겠지만 우두커니 혼자 있는 녀석을 보면 세상과 소통하는 감각스위치가 모두 전원오프된 것 같아 한없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이에 일부러 무릎 위에 올려주곤 했지만 예전과 달리 엄마의 양반다리 윗자리가 불편한지 금세 내려가 버린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새롬이에게 낙은 '먹는 낙'이 최고인 것 같다.
사람이고 동물이고 병에 걸리거나 몸이 아프면 입맛부터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아직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식탐을 부리는 새롬이를 보면 안심되는 한편 기특하기까지 하다. 또 평생 새롬이 지정석이었던 엄마 무릎도 거부하는 걸로 보아 적어도 눈이 안 보여 그렇게 오매불망 엄마만 바라보던 새롬이가 이제 엄마 얼굴을 못 봐서 얼마나 힘들까 하는 걱정은 엄마 혼자 김칫국 한사발 원샷한 격으로 기우인듯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하겠다.
씩씩이는 투병동안 오른쪽 안구의 각막 병증으로 안구 적출수술까지 하는 바람에 무지개다리 건너기 직전까지 남아있던 왼쪽 눈을 금이야 옥이야 보호하며 한쪽 눈이나마 지켜내기 위해 애를 썼었다. 마찬가지로 새롬이도 양 눈의 기능은 이미 상실했지만 그래도 안구적출 없이 포도알처럼 영롱한 두 눈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매일 살피고 있다. 가끔씩 새롬이의 몸 상태가 안 좋아지면 양 눈에 결막염이 심해지곤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정말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아프다.
눈도 안 보여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는데 결막염 통증에 힘들어하는 녀석을 보면 시력이 돌아오길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 사치다. 지금처럼 형태적으로 나마 두 눈이 온전히 자리해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내가 강아지를 반려동물로 키우며 녀석들에게 정말 고마웠던 점이 있다.
녀석들 덕분에 강제 운동, 산책을 시작해 이제는 생활습관으로 완전히 자리 잡아 녀석들 없이도 혼자서도 운동을 나가게 되었다는 점과 녀석들과 함께하며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초점을 두며 살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과거를 흘려보내지 못하고 과거에 매여 살면 '후회'를 낳고, 미래를 당겨 살게 되면 '불안'을 낳는다고 한다.
평소 긍정성이 강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예전에는 '불안'을 늘 안고 살았던 것 같다. 과거는 이미 흘러버려 어쩌지 못하지만 다가올 미래만이라도 철저히 준비해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 충실히 살기보다 쓸데없는 불안을 껴안고 살았더랬다.
15년 가까이 반려견들과 함께 하며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를 수 있었다.
녀석들과 교감하며 위안을 얻고, 함께 산책을 다니며 사계절에 따른 아름다운 자연의 변화를 모든 감각을 열어 오롯이 담을 수 있었다.
새롬이와 얼마나 더 산책을 다닐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늘 지금 이 순간을 살게 하는 녀석 덕분에 녀석들이 모두 내 곁을 떠난다 해도 변함없이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며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