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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Aug 12. 2024

새롬이가 후지마비 위기가 왔어요.

죽음에 대한 선택권이 내가 아닌 새롬이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최근 들어 새롬이 뒷다리 힘이 더 많이 약해졌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더 유심히 관찰했던 터였지만 한편으로 더워진 날씨 탓이려니 넘기고 싶었다.

그러다 며칠 전 아침, 새롬이의 걷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왼쪽 후지 발목 부위가 접힌 채 잘 걷지 못한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새롬이는 3년 반 전 다발성 디스크를 진단받았다.

어느 날 갑자기 걷지 못하고 좋아하던 밥도 간식도 먹지 않으려 해 부랴부랴 병원을 방문해 MRI까지 촬영한 결과 디스크 부위가 최소 세 곳 이상으로 당시 수의사샘은 상식적으로 이 정도 디스크 상태면 후지마비가 오는 게 일반적 이리고 했다. 또 디스크 수술을 한다 해도 후지마비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고민 끝에 수술을 포기하고 수술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치료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 결과 디스크로 후지마비가 온 강아지가 침치료 후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병원 홍보 영상을 본 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을 방문해 6차례 정도 침치료를 받았었다. 더불어 소염진통제 약물치료도 병행했다.


침치료 후 디스크가 완치되었을 리 만무하지만 그럼에도 후지마비 없이 다시 걷게 되어 3년 간 잘 버텨준 새롬이였다. 양한방 수의사 샘들 모두 한 목소리로 새롬이가 후지마비가 오지 않고 걷는 것은 기적이라고 했다.

그렇게 새롬이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로 3년 넘게 기적을 보여주었다.


비틀비틀 걷더라도 걸을 수 있으니 집안에서 대소변 처리가 가능했고 눈이 안 보이더라도 걸을 수 있으니 산책도 가능했다. 다발성디스크의 통증을 안고도 짧은 거리나마 산책을 다니고, 눈이 안 보여 오로지 후각 만으로 패드의 위치를 파악해 패드 위에 예쁘게 소변을 봐주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너무 기특하고 대견한 녀석이었다.


그랬던 새롬이에게 다시 또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왼쪽 발의 발목이 접혀도 감각이 떨어진 탓인지 바로 제 위치로 발목을 펴지 못했다.

즉시 새롬이를 데리고 이전에 방문했던 한방재활 동물병원에 방문했고, 이틀 동안 연이어 침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3년 전만큼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치료 후 상태가 더 악화된 듯 보였다.


이대로 새롬이가 걷지 못하고 후지마비가 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근심에 압도되어 며칠간 잠도 오지 않고 입맛도 저만치 달아나 버렸다.

안 되겠다 싶어 평소 집 근처 다니던 병원을 찾아갔다.

원장님은 새롬이가 2022년에도 디스크 통증으로 소염진통제를 처방받고 호전된 적이 있으니 침치료를 중단하고 약물치료를 하며 상태를 관찰해 보자고 했다.


지금 새롬이는 약물치료 3일째로 한참 안 좋았던 때보다는 상태가 호전되어 한숨 돌린 상황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씩씩이를 방광암으로 떠나보낸 지 이제 5개월이 넘었지만 난 아직도 당시 투병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씩씩이가 투병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몸살이라도 걸린 듯 온몸이 아파온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자식과도 같았던 녀석이 암 통증으로 괴로워하고, 작은 몸을 반짝이게 하던 생명의 불이 서서히 꺼져가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던 8개월의 투병기간은 정말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나 역시 씩씩이와 함께 빛을 잃은 채, 녀석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마지막을 배웅했다.


인생에서 겪는 모든 경험은 다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경험이 설사 시련일지라도 회피하지 않고 온몸에 힘을 빼고 유연한 태도로 의연하게 겪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의미와 가치를 당장 발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먼 훗날 내 남은 삶에 걸쳐 어느 시점에라도 깨닫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했고, 시련이 주는 고통도 담담히 수용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왔다.


지금도 인생의 시련과 고통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과 자세는 변함이 없다.


다만, 씩씩이를 떠나보내며 배운 게 있다면 사랑했던 반려견을 안락사로 떠내 보내 건 자연사로 떠나보내건 그 방식과 상관없이 겪게 될 고통과 아픔은 똑같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며 후회 없는 이별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안락사로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남은 상처만큼이나 자연사로 떠나보내기까지 투병의 과정이 남긴 상처 또한 극복하기 녹록지 않다.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은 인생의 긴 선에서 씩씩이를 떠나보낸 사건은 어쩌면 내 인생 선의 한 점에 불과할지 모른다. 내 삶을 온전히 평가하고 논할 있는 시점은 인생의 마침표를 찍기 직전에서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일어난 삶의 사건들은 인생 선을 이루는 한 지점의 점에 불과하고 삶의 종결로 향하는 정일 뿐으로 최종 평가의 대상은 아니다.


나는 다시 씩씩이에 이어 새롬이의 마지막 죽음 방식에 대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

아직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곧 다가올 엄연한 현실이다.

지금 내게는 씩씩이에게 했던 것처럼 새롬이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함께 고통을 나눌 용기가 남아있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새롬이가 마지막에 겪게 될 고통을 온전히 지켜볼 자신이 없다.


모든 사람의 삶을 관통할 지혜로운 하나의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때 당시 내 삶에서 최선이라 판단해 선택한 답이 내게는 정답이었다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회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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