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어 좋은 점

가면없는 가벼운 삶

by 써니현

신중함과 소심함, 애착과 집착, 용감함과 무모함, 뚝심과 고집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신중함의 이면은 소심함이요, 애착의 건너편에는 집착이 도사리고 있고 용감함과 뚝심이 지나쳐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주변까지 괴롭게 한다면 무모함, 고집이란 단어로 단숨에 변환되어 그 의미는 종이 천장의 차이가 된다.


어릴 때 종종 친구로부터 성격이 소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았기에 소심함에서 솟아난 재잘재잘 한 질문들은 자체검열을 통해 꾹 삼켜내곤 했다. 친구와의 관계가 중요하던 시절인지라, 그 후로 소심한 성격을 숨기려 일부러 대범한 척 행동하려 애썼다.


타고난 천성대로 편안하게 행동하기보다 타인이 좋아할 만한 모습으로 적당히 포장해 선보이고 나면 영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어색함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포장지는 더 겹겹으로 두꺼워졌고 마치 내 피부인양 착각 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내 모습을 깨닫게 된 결정적 계기의 순간이 있었다.


때는 17년 전, 당시 나는 인생 최대 암흑기 속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느낄 만큼 절망하고 무기력했으며 우울증이 심각했던 시기였다. 얼마나 우울함이 깊었는지 한숨 푹 자고 일어나도 눈물이 났고, 출근길 번잡한 지하철 의자에 편히 앉아 앞사람이 쳐다보건 말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왜 눈물이 나는지 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당시 나의 뇌 호르몬 체계는 단단히 고장 나 있었고 희망이란 두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은 울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직장에서 사람을 대할 때는 사진 촬영 전 '김치' 입모양이 탑재된 거 마냥 자동적으로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다.

내 마음과 표정의 괴리가 어찌나 컸던지 그 표리부동의 간극만큼 공허함이 채워졌다.

그 순간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대체 누굴 위해 이렇게 환한 억지웃음을 짓는 거지?'라고 자문하다 보니 자괴감 마저 들었다. 후로는 마음과 따로 노는 포장용 억지웃음은 짓지 않기로 결심했다.

'웃으면 복이 온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라며 웃음의 가치를 넘어 억지웃음까지 권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른도 슬플 때는 소리 내어 꺼이꺼이 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하나로 존재하기도 벅찬 인생에 직장 내 역할부터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배우자,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부모로 겹겹이 가면을 쓰고 가면에 맞는 역할 딱지까지 덕지덕지 붙이고 살아가는데 힘들 때 힘들다고 마음껏 울지도 못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드니 가면을 하나 둘 벗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이 들어 좋은 게 있긴 있나 보다.

혼자 있는 고독의 시간을 통해 가면 없이 온전히 나로서만 존재하며 진짜 내 모습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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