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개똥철학

by 써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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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두 녀석을 키우면서 녀석들에게 배우고 싶었던 한 가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가만히 있는' 모습이었다.

하루 중 산책 시간, 밥 먹는 시간,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면 반기며 놀아달라고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녀석들은 자기들 고정석에 앉아 잠을 자거나 눈알만 굴려가며 집안을 부지런히 오가는 내 모습을 응시했다.


시츄만 세 녀석 키워본 터라 의젓함이 시츄만의 종 특성일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가만히 누워 쉬고 있는 녀석들을 볼 때면 한껏 널브러져 쉴 수 있는 게으름의 능력이 때로는 부럽기까지 했다. 가만히만 있어도 '중간'은 간다는데 녀석들은 인간과 견주어도 중간 이상은 갔으리라.


간호대학은 3학년부터 병원 실습과 학교 수업을 병행하는데, 병원 내 모든 과를 두루두루 거치며 실습을 한다. 이런 실습과정을 통해 졸업 후 병원에 취업할 때 나에게 맞는 근무 부서를 최종 선택하여 지원할 수 있다.

당시 실습 부서는 '수술실'이었다. 수술실에 근무하는 의료진은 환자를 감염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는 모자부터 마스크, 장갑, 수술가운 모두 멸균 처리된 것 들이다. 수술실에 입실하기 전 소독제와 솔로 손톱밑까지 수차례 깨끗하게 씻은 후 멸균 처리된 모든 의복을 착용한 후에야 실습에 임할 수 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어리바리 초긴장 모드로 수술 광경과 간호사 선생님의 어시스트 모습을 경이롭게 지켜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이유는 고질병인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이었다. 내 비염은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심해지는 특성이 있다. 학생 신분인 실습생은 그냥 모든 과정을 가만히 지켜만 보면 되는데 그 가만히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마스크 안에서 콧물은 줄줄 흐르고 콧구멍은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소독 장갑까지 낀 손으로 소독이 안된 얼굴부위를 절대 만져서는 안 되므로 두 손은 멸균 영역 안에서만 가만히 두어야 하는데 간지러움을 참아내기가 거의 고문 수준이었다. 절대 손으로 긁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니 반작용으로 약 올리듯 머리통까지 가렵기 시작했다. 그날 실습 이후로 수술실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다.


'가만히'의 국어사전적 정의는 움직이지 않거나 아무 말 없이란 뜻이다. 또 어떤 대책을 세우거나 손을 쓰지 않고 그냥 그대로란 뜻이란다.


우리는 어쩌면 가만히 있어서 초래된 인생의 고난보다 가만히 있지 못해서 맞게 된 삶의 고난이 더 크지 싶다. 입을 가만히 두지 못해서 상대에게 아픈 말로 상처를 주고 다툼에 휘말리기도 하고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해서 경거망동해 일을 그르친다. 또 마음을 가만히 지켜보며 내버려두지 못해서 고통스럽게 방황한다.


특히 요즘같이 스마트폰으로 모든 정보를 즉시 검색하고, 보고 싶은 사람에게 언제든 연락할 수 있어 궁금해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도파민 과잉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가만히 있음은 어쩌면 가장 힘든 과제이자 도전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란 말을 온몸으로 실천하며 내게 가르침을 준 울 강아지 녀석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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