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 : 엄마와 410일째 이별 중인 씩씩이와 왕장미
직장에서 업무 특성상 행복한 아이들보다 마음이 아픈 친구들을 주로 만나게 된다.
정말 몸이 아파 보건실에 오는 친구들도 있지만, 정서적 어려움이 쌓이고 쌓여 아이의 작은 어깨를 짓누르다 결국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두통이나 복통 등의 신체 증상으로 발현되어 오는 경우도 많다. 그런 아이들은 어른과의 수평적 눈 맞춤이 어색한지 시선을 피한다.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는 간단한 질문에도 어두운 표정으로 잔뜩 위축되어 증상조차 또박또박 말하지 못하고 웅얼거려 귀를 바짝 가져가 들어야 한다.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내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 깊숙이 한 구석이 아리다.
나 역시 불우라면 뒤지지 않을 가정환경에서 큰 탓에 어린 시절 표정이 없는 회색빛 감정을 가진 아이였다. 정서적, 신체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환경에서 크다 보면 타인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해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위협으로 다가오기 쉽다.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자신감 있게 세상과 교류하며 관계를 맺어가야 하지만 위협에서 보호하고자 우선 움츠리고 본다. 그 움츠림도 어찌 보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인 샘이다. 아이는 자신을 지킬 사람은 자신 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철없는 부모를 원망하기보다 이해하려 든다. 어차피 자신을 지켜줄 사람은 현실적으로 부모라는 사실은 명확하기에, 부모를 미워하기보다 사랑하고자 애를 쓰며 일찍 철이 든 애어른으로 성장한다.
난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계절의 변화가 주는 아름다움을 처음 느꼈다.
21살 재수시절 한겨울 답답한 교실에서 창밖으로 펑펑 내리던 첫눈을 보겠다며 창가로 달려가던 친구들을 보며 매년 겨울이면 보는 눈이 뭘 그리 예쁘고 설렌다고 저리 호들갑을 떠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시절 나는 아무리 경이롭도록 아름다운 장면을 보더라도 감동하는 마음이 없었다. 감동뿐 아니라 기쁨도 슬픔도 잘 느끼지 못했다. 유일하게 느낄 수 있던 자연스러운 감정은 분노와 억울함이었다.
보건실에 온 아이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듯 슬픔으로 가득 차있었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은 상처를, 얼마나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받아온 걸까.
그 슬픔이 마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만남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기나긴 통찰의 시간을 보내야 할까.
아이는 여태껏 자신이 선택한 적 없는 열악한 부모와 환경 속에 출생과 함께 내동댕이 쳐져 살아왔기에 안락함. 따뜻함, 편안함의 정서를 알지 못한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그 맛을 아는 법이다. 늘 불안하고, 분하고, 억울하고, 슬픈 감정을 주감정으로 살아온 아이는 부정적 정서가 평소 감정이 되어버린다. 단단하지 못한 마음은 작은 감정의 파도에도 쉬이 휩쓸리며 넘어지고 방황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삶은 변화무쌍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폭망 모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 그동안 고생했다 등 두드려줄 천사 같은 사람들이 선물처럼 위로자로 찾아온다.
천사와의 만남을 통해 원가정에서 받지 못한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위로의 말을 듣고 공감을 받으며 마음의 빈틈을 조금씩 메꾸어 나갈 수 있다. 천사 덕분에 자신의 결핍을 채움과 동시에 결핍을 자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평생 고기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이 처음 고기를 맛보면 부드러운 육질과 고소한 기름이 주는 미각의 풍요로움에 더 깊이 빠져들듯 메마른 감정에 단비와 같은 천사의 존재로 인해 결핍 또한 빠르게 깨달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러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정체 모를 공허함 속에 방황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경험을 통해 배운다.
좋은 경험, 나쁜 경험 할 것 없이 그 속에서 배우고 성장한다.
하지만 억센 불운에 당첨되어 버린 아이들을 만날 때면 한없이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내 과거와 만나는 일이어서 더 아픈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