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쉽지 않음은 마음의 저항을 일으키는 일상의 소소하지만 만만치 않은 사건들 덕분이다.
마음 길을 따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는 일들만 벌어지면 좋겠지만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들과 맞닥뜨렸을 때 즉각적으로 튀어나오는 사지육신 반응을 마음 근육으로 단단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 인격의 바로미터라 생각한다.
마음 같아서는 어떤 순간에도 품위를 지키며 상대를 존중하는 말과 행동으로 내 인격을 힘껏 고양하고 싶지만 다혈질적 기질을 타고난 내게 그 목표는 늘 요원하고 언감생심이다. 망둑어 뛰듯 사방팔방 팔딱였던 젊은 시절의 다사다난함을 보낸 결과 50대에 이르러 그나마 타고난 성정을 파악하고 다스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라 하겠다. 물론 이 조차 나이가 가져다준 자연스러운 성숙의 결과라기보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어보니 성질머리를 다스리지 못하면 결국 내 손해라는 단순 명료한 진리를 체득했기 때문이다.(사람 고쳐 쓰는 게 아니라지만 긴 시간 개고생은 그나마 사람을 철들게 하는 기회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다혈질적 기질을 가진 사람으로서 화를 잘 다스리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부럽고 존경스럽다.
같은 상황에서 나라면, 백이면 백 '화'가 날 텐데, 누가 봐도 화의 정당성이 쉬이 확보되는 상황임에도 상대의 허물을 들추어 험담하기보다 침착하게 상대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리려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바보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우러른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문제는 가족 내 관계뿐 아니라 직장생활의 성패도 좌우한다. 나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입사한 직장에서 일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힘들어서 퇴사를 했었다. 퇴사 후 재취업에 수차례 실패하며 조금만 더 참을걸 뒤늦게 후회했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인간관계의 실패는 결국 직장에서의 퇴사를 불러왔고 세상천지 비빌 언덕 없던 사람에게 매달 받는 월급이 사라진다는 것은 가난의 매서운 현실을 단박에 마주하게 했다. 또 경제적 어려움은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을 처리하기 급급하게 만들어 미래를 계획하고 꿈꾸는 것조차 사치로 만들어버린다. 돌아보면 내 20대 시절 인간관계의 실패가 가져온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인생에 있어 중요한 선택의 폭을 확 좁혀버린 점이었다. (물론 퇴사 후에도 든든하게 지원해 줄 금수저 부모님이 계시다면 선택의 폭은 여전히 8차선 도로임)
그렇게 인간관계의 실패가 불러온 후과는 생각보다 컸고 그 후 내 인간관계의 목표는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되었다.(이 목표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직장에서 만나는 소시오패스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그들이 쳐놓은 그물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어쩔 수 없이 그물 안에 머물러야 할 때는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게 상책이다. 상대의 뾰족함과 나의 뾰족함이 만난다면 그 끝은 자신을 더 크게 드러낸 자부터 파국일 테니 나의 뾰족함을 깎고 다듬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인격도 덩달아 성장하는 보너스를 누리게 된다. 물론 성장을 위해 일부러 힘든 삶을 선택할 필요는 없지만 운명처럼 어쩔 도리가 없는 세상의 파고 앞에 살아남기 위해 깎이고 깎이다 보니 남은 건 내면의 단단함과 성장이었다는 잠재적 결론을 얻은 것뿐이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고 정지상태로 머물 수 있는 것도 없다.
시간 앞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부질없이 사라지겠지만 세월의 횡포 앞에 가장 마지막까지 흩어지지 않고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내가 가진 마음의 가치, 정신적 가치가 아닐까 싶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훼손할 수 없는 영원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면 당장 실천해 보자. 오늘 만난 미운 사람이 있다면 욕하고 싶은 마음 꾹 참고 인간이 불쌍하다며 용서해 주기!
또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