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천안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겸사겸사 엄마도 뵙고 왔다.
5월 초 어버이날 찾아뵙고 거진 두 달 만에 상봉이다. 맛있는 저녁을 사드리겠다 했더니 오리 사놓은 게 있다며 오리백숙 해 놓을 테니 기어코 집에서 먹자고 하셨다. 50대에 접어든 갱년기 딸이 뱃살 걱정으로 저녁은 가볍게 먹고 싶어 한다는 걸 전혀 알 일 없는 엄마.(엄마 눈에 나는 아직도 어린 시절 배고파 엄마를 찾던 딸이다.) 엄마는 지지리 가난하던 어린 시절 풍족하게 못 해먹인 한이 깊게 남았는지 연로해진 지금도 다 큰 딸을 위해 밥상 차리는걸 마다하지 않으신다. 그렇게 상다리 부러질 것 같은 엄마표 저녁 밥상에 앉자마자 엄마는 푹 고아진 오리다리 한쪽을 쭉 뜯어 온갖 약초로 달인 뜨끈한 국물과 함께 가득 퍼 주셨다.
온기 가득한 다정한 말로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투박한 엄마는 그렇게 손수 만들고 차려낸 따뜻한 밥상으로 자신만의 사랑을 표현한다. 그 사랑을 다 받아먹기엔 이제 나이가 들어 건강 걱정이 앞서지만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다시 어린 시절 먹성 좋던 배곯은 아이로 돌아가 맛있게 받아먹는다. 하지만 그 많은 찬거리를 혼자 차려낸 엄마는 한술 뜨기도 전에 이미 피곤에 지쳐 얼굴 가득 졸음이 묻어있다. 그래도 자식들이 고생해서 번 돈을 쓰게 하는 외식보다 당신 몸 힘들어도 집밥을 차리는 게 더 행복하다는 엄마를 더 이상 말릴 수가 없다.
그렇게 내가 엄마에게 주고 싶은 효와 엄마가 받고 싶은 효는 같은 선상에 있지만 방향은 정반대다.
엄마는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들과 오손도손 모여 앉아 밥을 먹고, 밥상을 물리고 나면 작은 방에 대자로 드러누워 그동안 듣지 못한 자식들 살아가는 이야기나 손주들 소식을 전해 듣기를 즐긴다. 또 어린아이가 억울한 일을 겪으면 엄마에게 재잘재잘 일러바치듯 일상의 크고 작은 소소한 사건들을 딸들에게 이르고 위로받는 걸 좋아한다.
물론 수요자 요구에 맞추어 공급의 내용이 결정되는 게 맞지만 한동안은 내 기준에 따른 맞춤형 효도를 일방적으로 제공했고 그것을 즐기지 못하는 엄마를 지독한 가난 후유증으로 인한 부적응이라며 애써 측은해하다가 결국 내 노력을 고마워하지 않는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내 입장을 말하자면, 평생 고생만 한 엄마가 딸 돈으로 특별한 날이나마 호강하는 경험을 한 번쯤 편안하게 누렸으면 했다. 하지만 엄마는 딸 돈도 엄마 돈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돈으로 사서 주는 호강은 질색팔색 하신다.
그런 엄마에게 무수리 말기 병이라는 핀잔과 함께 엄마의 생각을 강제 하차시키고 내 주도하에 (이제 편안히 좀 누려보라며) 여행을 가거나 맛집에서 밥을 사드려도 엄마는 그놈의 '돈' 생각에 누리기는커녕 온갖 불평불만을 해대며 불편해하신다. 또 큰맘 먹고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도 '아휴. 내 집이 제일 편하다'며 꼭 초치는 발언을 해서 결국 나를 화나게 했다.
엄마의 외식 기피 논거를 소개하자면, 고깃집에서 사 먹는 고기 가격으로 삼겹살을 사다가 집에서 구워 먹으면 온 가족이 배 터지게 먹을 수 있고 또 고기를 다 먹고 나면 가게를 나와야 하지만 집에서 먹으면 배불리 고기도 먹고 시간제한 없이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으니 집밥이 최고라는 식이다. 그럼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자고 하면 집에 널리고 널린 게 (믹스) 커피인데 왜 쓸데없이 비싼 돈을 주고 밖에서 커피를 마시냐며 중대한 가족 간 해당행위쯤으로 여기신다.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카페에서의 시간은 커피값이 아닌 장소에 대한 대가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엄마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돈을 지불한 대가로 쾌적한 환경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추억을 쌓고, 가사 노동을 쉴 수 있는 등의 이점은(굳이 골목 상권 경제 활성화라는 거대한 이유는 쓰지 않겠다) 엄마에게 전혀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시간을 쓰고 몸이 고생스럽다라도 '돈'을 아끼는 것이 엄마의 평생 소비 습관이다. (엄마 같은 사람만 있다면 우리나라 자영업은 폭망이다.)
이제는 그런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엄마가 원하는 효도를 하기로 결심했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받아먹으며 엄마가 풀어놓은 이야기보따리를 정성껏 맞장구치며 공감해 준다.
그제야 엄마는 만족스러운지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엄마를 보며 이번에는 제대로 효도한 것 같아 서울로 올라오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효도 참 쉽죠잉~~~
(엄마. 내년에는 물가 상승분만큼 용돈도 더 올려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