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육아기
평소 겁도 많고 용기도 없어 남 앞에 나설 때면 심장부터 두근거려 정신줄을 붙잡아야 했던 내가 어쩌자고 대책 없이 '결혼'이란걸 했을까? 또 몸만 어른이었지 정신 연령은 칭얼칭얼 어린아이였던 내가 어쩌자고 대책 없이 '자식'이란 존재를 낳았을까?
나 하나도 어쩌지 못해 좌불안석이던 그 시절, 끝도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어디쯤 종이배 같은 자존심 하나 부여잡고 코만 간신히 물밖으로 내밀어 꼴깍꼴깍 숨만 이어가던 사람이 '결혼' 이라니.
정말이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막무가내식 무대책 소행이었다.
쇼핑을 가서 싸구려 가방 하나를 골라도 가격부터 재질, 디자인, 색깔까지 요리조리 꼼꼼히 고심하거늘 무려 인륜지대사인 결혼을 하고 생명체인 애를 낳는 일에는(self 생명체도 건사 못하는 마당에) 충동구매를 해버렸다.(심지어 저출산 시대도 아니어서 출산장려 정책은 1도 없던 시절이었음)
그 대가로 나는 24년간 딸을 키우며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현재, 성인 육아로 번아웃 상태임)
이제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한 딸을 둔 엄마임에도 종종 금쪽이 상담프로를 보며 지난날 서툴고 부족했던 엄마로서의 내 모습을 반성하고 마음 아파한다.
임신과 출산을 하면 임신줄이나 튼살(아니면 정말 살)과 같은 흔적을 몸에 남기듯이 뇌에도 '훌륭한 엄마 자격 뇌세포'가 뇌구조에 자동 탑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딸은 이미 성인이 되었고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음에도 자꾸 그 시절 엄마로서 부족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혼자 괴로워한다. 생물학적으로는 아이의 엄마였지만 진정한 어른으로서 아이를 사랑하고 품어주지 못했다.(애가 애를 키운 격)
인생 회차를 돌려 다시 엄마로 돌아간다면 이번 생보다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며 영양가 하나 없는 쓸데없는 상상이나 하고 있다. 뭐든 직접 맛을 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는 나는 직접 엄마가 되어보고 아이와 똑같은 수준으로 싸우며 고만고만한 육아를 했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밀려드는 자책!
'아차! 난 엄마다' 라며 정신을 차리고 후회하는 무한 반복의 과정을 보낸 후에야 엄마로서 자격 미달이었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엄마로 산 내 삶을 돌아보자면 끊임없는 고통의 과정, 아니 더 그럴듯한 멋진 단어로 포장하자면 '성장'의 과정이었다. 이제 고통을 수반한 성장은 그만하고 이 정도 인간으로 적당히 살다 떠나고 싶은데, 도대체 내 마음의 예상 키를 어디까지 설정해 놓은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한 달여에 걸친 딸과의 감정적 실랑이로 고통의 끝을 맛본 후인지라 몸은 기가 다 빠져나간 듯 바스러졌지만 내면은 인간으로서 또 엄마로서 고독한 성장 중에 있다 하겠다.
심각한 저출산 시대에 TV만 켜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금쪽이들 상담이 주를 이루어, 이건 결혼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애는 낳으라는 건지, 낳지 말라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지만 철저한 비전문가적 입장으로서 의견을 피력하자면 번데기가 나비로 변태 할 때 고통을 이겨낸 후에야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듯이 성장하고 싶다면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봐라'라고 말하고 싶다. (보너스로 인류의 존속에 이바지)
끝으로 이 글은 순전히 나를 위로하기 위해 쓴 글임을 밝힌다. (그래! 나는 더 성장했을 거야. 아마도... 그랬을 거야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