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감긴 눈으로 옆에 자고 있을 새롬이를 더듬어 찾는다. 그런데 새롬이가 손에 닿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보니 녀석은 이미 기상해 내 머리맡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칠흑 같은 적막의 시간을 얼마나 보낸 걸까.
'사드'(sard)라는 희귀병으로 양눈의 시력을 잃고, 노화로 청력마저 희미해진 새롬이의 아침은 배꼽시계가 열어준다. 또 발바닥 피부와 온몸의 털에서 감지한 촉감과 노쇠했어도 개코는 개코인 후각을 통해 익숙하면서도 낯선 세상과 인사를 나눈다.
엄마의 손길을 감지한 새롬이가 척추디스크로 약해진 뒷다리에 힘껏 힘을 주어 '의쌰'몸을 일으킨다. 그런 다음 아침 밥상이 차려질 거실 주방으로 한발 한발 조심스러운 발길을 내딛는다.
목적지인 거실에 도착하기까지 새롬이가 만나야 하는 촉감 세상은 이러하다. 일단 잠자던 매트에서 내려가 몇 발짝 걸으면 안방의 문턱과 만나고 그 문턱을 넘으면 배변패드의 감촉과 만난다. 배변패드를 지나 좌측으로 몇 발짝 앞으로 가면 주방싱크대 밑에 깔아 둔 미끄럼방지 매트가 나온다.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지점에서 엄마가 밥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새롬이는 새벽 내 울려댄 배꼽시계를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밤새 잠을 자며 비축해 둔 기력을 성대로 끌어모아 큰 소리로 왕왕 짖어댄다.
이 시간의 짖음은 새롬이의 건강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나름의 척도이다. 노견인 새롬이는 하루하루 컨디션의 변화가 큰 편이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밥 달라 재촉할 기운도 없는지 짖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은 쿵 내려앉는다.
가끔씩 새롬이가 마주하는 세상이 궁금하다. 나지막한 소리로 이름을 부르면 잘 들리지 않는 듯하다. 간식도 코 밑까지 바짝 가져다준 후에야 냄새를 맡고 받아먹는다. 간식에 반응하는 속도로 보아 후각세포의 기능도 많이 쇠퇴한 듯하다.
씩씩이를 떠나보내고 나니 새롬이의 시간은 과연 얼마나 남았을지 두려워진다.
오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우리 집 강아지들 이야기다. 새롬이가 씩씩이보다 나이로 치면 2~3 세 살 형님일 텐데 동생 씩씩이가 먼저 떠나버렸다.
이제 우리 집 유일무이한 반려견이 된 새롬이와 보내는 일상이 너무 소중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적막강산으로 보내고 있을 새롬이. 새롬이의 촉감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녀석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