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계고 졸업자가 보건교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1편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되기
나는 1994년에 충남 시골에 위치한 당시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시절 내 성적은 중상위권이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스스로 눈치를 챙겨 고교졸업과 함께 돈을 벌기 위해 실업계고를 진학했다.
당시 인문계고에 진학했던 친구들이 부럽고 도서관에 가면 수학 정석을 펴놓고 공부하는 또래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의 고등학교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용의 꼬리가 아닌 뱀의 머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신 2등급, 취업모의고사에서는 전교 1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내신은 취업을 위해 교내에서 추천받을 정도의 성적만 유지하면 된다고 판단했고 더 중요한 것은 취업 시험(당시 농협 취업이 각광받던 시기)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게 고효율이라고 생각해 취업 모의고사에 집중했다.
하지만 고3 취업을 앞둔 해에 불행히도 농협은 공채를 뽑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대기업 시골 지사에 경리로 취업을 했다. 시골 지사였지만 대리급 이상부터는 모두 대졸자로 나는 용의 꼬리였다. 1년 넘게 근무하자 대졸자 상사에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많았다.
고등학교 시절 뱀의 머리를 해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용이라도 꼬리였던 내 처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막연하게나마 누구를 데려다 놓아도 할 수 있는 경리업무가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는, 나 아니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대학에 가자고.
그렇게 재수를 계획하고 몇 달 치 월급을 모아 대전으로 상경해 친척집에 신세를 지며 8개월간의 재수 생활을 시작했다. 재수 등록을 위해 학원에 처음 방문한 날 반편성을 위한 모의 수능 테스트 시험을 보았고 결과는 총 300점 만점에 88점을 받아 최하위 반에 배정되었다. 수능을 공부해 본 적 없던 나로서는 당연한 결과였다.
재수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과목은 수학이었다. 상업고등학교에서 아주 기본 수학만 배웠기에 아무리 단과 수업을 들어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일찌감치 내 능력을 빠르게 인정하고 수학은 찍기 신공이 찾아오길 기대하며 다른 과목에서 더 많은 배점을 얻어야겠다고 공부 전략을 수정했다.
이 전략으로 간신히 지방 사립대 간호학과에 후보 합격하게 되었다. 그나마 고등학교 시절 취업 추천을 받기 위해 내신 관리를 했던 덕을 본 것이다. 간호학과에 1등으로 합격하건 문 닫고 들어가 합격증을 받건 그 학교 학생인 것은 똑같았다.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해 또 뱀의 머리가 되면 되는 것이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실업계고를 진학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하고 펑펑 노는 모습을 보고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뱀과 용을 선택하라면 나는 당연히 뱀의 머리를 선택할 것이다. 용의 꼬리가 되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자존감을 떨구느니 뱀의 머리가 되어 기회를 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