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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Apr 11. 2024

반려견이 떠난 후 단상

죽음이 두려워졌다.

씩씩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27일째다.


퇴근해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반겨주던 녀석이 없으니 집안이 텅 빈 것 같이 허전하다. 새롬이는 14살 노견이라 짧은 산책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내내 잠을 잔다. 그나마 2살 어렸던 씩씩이는 발랑 발랑 해서 집에서도 자주 놀아주었는데 그런 녀석이 없으니 집에서 웃을 일이 없다.


씩씩이는 방광암으로 마지막 8개월 동안은 배뇨 시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지난한 투병을 했다.

씩씩이가 암으로 떠나기까지 전 과정을 초근접으로 지켜보며 나는 새삼 암이 정말 무서운 질병이구나 다시금 자각했다. 병원에서 보아온 암 환자들과 아무리 의료 선진국임을 자랑해도 여전히 우리나라 사망률 1위가 '암'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암이라는 질병은 멀게만 느껴졌었다.


씩씩이의 고통스러운 투병 과정을 오롯이 지켜보고 나서야 나는 암이 너무 무서워졌다.

나이 들어 죽더라도 암으로는 절대 죽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바람이 생겼다.


오늘 아침 우연히 어떤 연예인의 어머니가 심장질환으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 기사를 봤다.

연예인은 평소 건강하시던 어머님이 이렇게 황망하게 떠나 줄 몰랐다며 어머님의 심장 검진을 소홀히 한 것이 죄스럽다고 했다.


기사를 읽고 나서 생각했다.

심장질환으로 하루아침에 사망한 것이 가족에게는 마음의 준비 없이 닥친 이별로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환자 본인에게는 무한한 축복일 수 있다고..


암이라는 병은 드라마 단골 대사처럼 '짦으면 6개월, 길면 1년 남았습니다.'라는 식의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문제는 6개월에서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멀쩡하게 밥도 잘 먹고, 통증도 그런대로 심하지 않게 잘 조절되다가 하루아침에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한부 선고 기간 동안 암 환자는 죽음이라는 최종 목적지로 극한의 통증을 나쁜 벗 삼아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말라죽어간다. 그 기간 동안 간병하는 가족들은 환자의 죽음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겠지만 그 고통을 다 겪어내고도 결론은 '죽음'뿐 이라는 지독한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환자의 마음은 얼마나 비통할까.


나는 암으로는 정말 죽고 싶지 않다.

죽음에 대한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심장 질환이 백배 나을 것 같다.


씩씩이는 암으로 떠나면서 8개월간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나와 함께한 9년의 기간 중 투병기간을 제외한 8년 4개월은 우리 집 대장 노릇하며 매일 산책 다니면서 정말 행복하게 살았다. 그렇게 인생 전반에 걸쳐 살펴보면 씩씩이의 삶은 대체로 행복했다.


씩씩이의 죽음을 보며 나의 죽음도 반추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대부분 기저귀를 착용한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대소변을 가리기까지 지겹게 착용했을 기저귀를 죽기 전에 또 차야 한다. 직설적으로 팩트를 말하자면 죽기 전에 사람마다 기저귀를 착용하는 기간만 조금씩 차이가 날 뿐이다.


씩씩이가 떠나고 생명의 유한함을 절감하며,  죽음을 앞두고 어떻게 살아야 그나마 후회가 덜 할까 성찰하게 된다.


나도 씩씩이처럼 투병기간을 제외한 남은 삶은 정말 행복하고 싶다.

지금껏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간절히 행복을 지향했음에도 행복과 불행이란 양념 중 불행이 조금 더 많은 비율로 버무려진 매운 삶이었다.

언젠가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릴 우리네 삶이 애석하고 허망하다앞으로 남은 삶은 정말 행복만 하고 싶다.


이번 주말이면 벚꽃이 만개할 것 같다. 한 철이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벚꽃 구경이나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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