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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May 06. 2024

할배 새롬이도 한때는 로멘티스트였다.

새롬이와 청아의 아름다운 추억

새롬이도 나도 한때는 참 젊었다.

새롬이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내 나이 30 중반 즈음이었고, 새롬이 나이 4개월 즈음이었다.

만 4개월에 우리 집에 입양 온 새롬이는 어느덧 올해 14살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언젠가부터 내 나이도 헷갈리는 지경인지라 새롬이 나이도 매년 헷갈린다. 새롬이의 나이를 계산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는데 현재 딸의 나이에서 새롬이 입양 당시 딸의 나이를 빼면 된다. 현재 딸의 나이가 23살, 입양 당시 딸의 나이 9살이니 빼면 대략 새롬이 나이는 14살. 넓게 어림잡아도 15살로 추정하나 온 국민이 만 나이로 1살씩 어려지는 혜택을 입었으니 대세를 따라 새롬이의 공식나이도 14살로 하면 좋을 것 같다.


새롬이는 엄밀히 말하면 유기견이다. 

언니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조카의 성화에 못 이겨 애견샵에서 충동적으로 구입해 2주 정도 키우다 아직 배변훈련이 안된 아기강아지가 집안 곳곳에 똥오줌을 싸대는 것에 질겁하며 2주 만에 백기를 들었다. 평소 동물 사랑이 없는 데다 워낙 강박적으로 깔끔한 성격이었던 언니 성향으로 새롬이가 유기견으로 버려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결국 고민 끝에 내가 새롬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하고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언니의 호들갑스러운 똥테러 걱정과 달리 새롬이는 자기와 인연이 될 사람을 알아본 건지 몇 번의 배변 훈련  바로 대소변을 가리는 천재성을 보여주었다. 아기강아지도 눈치가 있어 자신을 예뻐해주지 않았던 전 주인과 달리 쓰다듬고 안아주고 사랑해 주는 새 주인이 고마웠나 보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새롬이의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으니, 그건 바로 '분리불안'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 세상에 짖지 못하는 강아지도 있나 싶을 만큼 얌전하다가 가끔씩 잠꼬대로 왈왈 짖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의구심이 해소될 정도로 새롬이는 정말 순둥이였다.


그랬던 녀석이 가족 모두 출근하고 혼자 있으면 얼마나 짖어댔는지 관리실서 민원이 들어왔다며 전화가 올 정도였다. 자칫 이웃들에 피해를 주어 새롬이를 키우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까 두려워 병원에서 신경안정제가 든 영양제도 처방받아 먹여보고 간식도 숨겨놓고 텔레비전도 틀어놓고 출근하는 등 별짓을 다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함께 지내는 친구가 있으면 분리불안이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는 정보를 듣고 고심 끝에 유기견 보호단체를 통해 시츄 '청아'를 입양했다. 청아 입양 당시 새롬이 나이 2살, 청아는 추정나이 7~8세 정도였다.


청아는 유기견보호소에서 지어준 이름으로 예쁜 이름답게 성격도 매우 유순하고 또 외모도 예쁘장한 암컷 시츄였다. 청아 역시 씩씩이처럼 우리 집에서 사랑 듬뿍 받으며 만 3년 정도 살다가 마지막 8개월은 심장병으로 투병한 끝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새롬이는 청아를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인간사 연애 감정에도 서툴렀던 나는 새롬이의 감정을 까맣게 몰랐다. 당시는 그저 새롬이가 청아를 귀찮게 하고 괴롭힌다고 생각했었다.


청아와 함께하며 새롬이의 분리불안이 단박에 고쳐진 것은 물론이었다.


새롬이는 청아의 귀 털을 자주 물고 장난을 쳤기 때문에 청아의 귀털은 늘 실타래 마냥 엉켜있었다.

또 멀쩡한 자기 방석을 놔두고 굳이 청아가 자고 있는 방석으로 엉덩이를 들이 밀어 청아와 함께 좁은 방석에서 몸을 구긴채 잠들곤 했다. 또 청아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귀를 물거나 장난감을 삑삑 거리며 장난을 쳤다. 그런 새롬이가 귀찮을 법도 한데 착했던 청아는 화 한번 내지 않고 새롬이의 짓궂은 장난을 다 받아 주었다.


청아는 심장병이 악화되면서 약기운이 떨어지는 새벽 2시 즈음이면 늘 깨어나 호흡을 힘들어했다. 나 역시 청아가 힘들게 숨을 몰아쉴 때면 잠에서 깨어 애타는 마음으로 청아를 지켜보며 간병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새롬이는 청아 상태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는 듯 한쪽에서 곤히 자는 듯했다.


그렇게 8개월간 심장병으로 투병한 끝에 청아는 2015년 9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하지만 청아가 떠난 슬픔을 가눌 새도 없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새롬이였다.


새롬이는 청아가 떠나자 식탐을 접고 한 달 내 설사를 하며 식음을 전폐했다.(식탐이라면 지금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새롬이가 밥을 안 먹을 정도였다니 지금 생각해도 새롬이에게 청아와의 이별은 큰 충격이었나 보다)

당시 새롬이의 상태가 걱정되어 동물병원서 진료도 보았지만 특별한 건강상 문제는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떠나 충격을 받은 것 같고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좋아질 테니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제야 새롬이의 청아를 향한 그간의 마음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사 연애감정에도 둔했던 나는 새롬이의 애틋한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청아를 귀찮게 한다고만 오해했으니 새롬이에게 지금도 면목이 없다. (새롬아, 미안해. 너의 진심을 오해했다)

새롬이는 청아가 떠나고 한참 동안 새벽 2시만 되면 혼자 깨어나 청아가 없는 거실과 방을 배회했다. 새벽 2시는 호흡이 힘들었던 청아가 늘 깨어있던 시간이었다. 분명 자고 있다고 생각했던 새롬이도 알고 보니 우리와 함께 깨어있었고 청아의 상태를 걱정하고 있었나보다.


사람도 한때 젊음을 불사르며 온 마음 다해 열정적으로 시랑 했던 경험이 쌩쌩한 청춘의 상징이자 훈장이듯이 우리 14살 노견 새롬이도 한때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사랑의 추억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새롬이의 이번 견생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새롬이 나이 5살에 청아와 아픈 이별을 하고 다시 거짓말처럼 분리불안이 재개되었다.

청아가 떠나고 혼자 남게 된 새롬이는 또다시 짖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시작된 분리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더 고민할 새도 없이 다시금 유기견 보호 단체의 문을 두드렸고 이때 입양한 녀석이 바로 '씩씩이'였다.


씩씩이와 새롬이의 관계는 이 연재글의 1편 '우리 강아지가 달라졌어요'를 참고하기 바란다.

씩씩이의 입양으로 새롬이의 아름다운 로맨스 드라마는 장렬히 막을 내리고 새롬이의 쭈구리 '을의 서막'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새롬이가 사랑했던 꽃시츄 '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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