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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May 12. 2024

견공계의 금쪽이 새롬씨의 하루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드디어 지난주에 덥수룩했던 새롬이 털을 이발했다.


새롬이 털을 이발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린 기분이다. 다른 부위는 몰라도 발바닥 털로 바닥을 쓸고 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혹시나 바닥에서 미끄러져 허리를 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제목 배경 사진에서 보듯 발털은 그런대로 정리했지만 다리털은 새롬이의 인내심이 바닥난 관계로 마무리 짓지 못해 어정쩡, 듬성듬성하다.




노견이 된 새롬이는 이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람도 나이 들면 체력적 한계로 최소 에너지만 쓰고 싶듯이 새롬이도 그런 것 같다. 귀찮은 이발에는 아예 최소한의 에너지도 쓸 마음이 없는듯하다.


일단 이발기의 진동 소리만 났다 하면 삐요삐요 사이렌 소리로 인식하는지 도망부터 친다. 원래도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녀석인데 이발기까지 들이미니 더 '바쁘다, 바빠'가 된다. 도망가던 녀석을 잽싸게 잡으면 손아귀를 벗어나려 용을 쓴다. 14살에 몸도 성치 않은 녀석이 그럴 때는 얼마나 힘이 지 모른다.




디스크가 있는 척추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서둘러 이발을 마치려 나도 용을 써본다. 그런데 새롬이와 사이좋게 늙어버린 내 몸뚱이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새롬이와 나는 다스크 동지다. 새롬이는 허리, 나는 목에 디스크가 있다.


눈이 안 보이는 새롬이의 안전이 걱정되어 바닥에 세워두고 이발을 하다 보니 나 역시 쭈그려 앉은 자세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미용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가 저려오고 목도 아프다. 또 노안 때문인지 초점이 맞지 않아 잘 보이지 않는다. 얼굴부위 특히 눈 주변에 이발기를 댈 때는 눈을 다칠까 싶어 최적의 거리를 조정해 시력을 확보한 후 한 올 한 올 조심스럽게 이발해야 한다.




새롬이 이발은 보통 화장실에서 이루어진다.

새롬이 이발 현장은 정말 난리법석이 따로 없다. 이발을 위해 화장실로 입장하는 내 마음도 나름 비장하다. 전쟁터로 출정하는 군인에게 무기인 총이 필수이듯 새롬이 전담 이발사인 나도 이발 무기들을 꼼꼼히 챙긴다. 자동이발기 두 개(전신용, 발 미용용), 가위(얼굴 주변 정리용), 넥칼라(발 미용할 때 입질로부터 보호), 비닐봉지(털 수거용), 강아지 타월, 내 속옷까지 빠짐없이 준비해야 한다.


또, 털알레르기 예방을 위해 마스크로 호흡기를 철통보호 한다. 그리고 거실로 털이 날리지 않게끔 문을 단단히 잠그고 고개를 숙이면 머리카락이 내려와 시야를 가릴 위험이 있어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맨다.




새롬이는 미용할 때뿐 아니라 평상시도 정말 한시도 가만있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새롬이가 유일하게 진득하니 있는 시간은 내 무릎 위에 올라와 쿨쿨 잠잘 때뿐이었다. 덕분에 내 무릎은 늘 양반자세로 접혀 고문 아닌 고문을 당했다. 눈이 안 보이는 지금도 가구에 쿵쿵 부딪치면서도 집안 곳곳을 누비고 다녀 새롬이의 안전을 위해 바닥에 웬만하면 물건을 두지 않는다.


새롬이는 강아지계의 금쪽이다.

내 생각에 조용한(짖지 않는) 강아지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로 추정된다.


그런데 견공계의 금쪽이는 과잉행동 덕에 후지마비를 면하는 기적을 이루었으니 일면 감사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움직인 덕택에 어릴 때부터 산책으로 축적해둔 다리근육을 제법 유지하고 있다.


양방. 한방 수의사선생님들 왈.

새롬이처럼 다발성디스크를 앓는 경우 90% 이상 후지마비가 온다고 한다.  지금처럼 걷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 기적이라고 했다.


눈이 안 보여도, 허리가 아파도 꿋꿋하게 산책하는 새롬아. 앞으로도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외치며 엄마와 더 멋진 기적을 일구어 보자꾸나.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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