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들을 키우며 딱 한번 샵에 미용을 맡겼고, 지금까지 직접 이발기 두 개(전신용, 발용)를 이용해 미용을 해주고 있다.
딱 한번 샵에서 미용을 해본 강아지는 우리 집 최조 반려견이었던 새롬이다.
5개월경 길어진 배넷털을 정리하기 위해 동물병원으로 미용을 보냈는데 다녀온 후 깔끔하게 정리된 털과는 달리 집에 돌아온 녀석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꾸 구석으로들어가 숨는 등 한참 이상행동을 보였다.
아마도 아기 강아지에게 미용은 공포의 시간이었나 보다.
갑자기 낯선 사람에 의해 높은 테이블로 올려져 움직임을 저지당한 채 차가운 칼날의 감각과 시끄러운 미용기의 소음을 들으며 따뜻하게 자신을 감싸던 털을 깎였던 경험이 어린 새롬이 한테는 충격이었나 보다.
새롬이에게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자꾸 자라나는 털을 두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새롬이의 배넷털이 빠지면서 나와 딸의 코가 근질근질하더니 급기야 콧물까지 줄줄 새어 나와 병원진료를 보았고 결국 강아지털로 인한 알러지성비염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느 집 시츄처럼 멋들어지게 털을 길러 앙증맞게 묶어준다든지 하는 멋 내기는 꿈도 꿀 수가 없었다.
또 두 녀석을 키웠으니 비용도 두 배로 만만치 않은 데다, 매일 산책을 다니다 보니 산책 후 씻고 긴 털을 말리는 과정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결국 강아지 전용 이발기를 구입했고 새롬이 털을 시작으로 내 손을 거쳐간 녀석들(청아, 씩씩이)의 털까지 깎아준 것이 어느덧 강아지 미용 경력 14년 차가 되었다.
털빨 무시 못하는 강아지 미용의 핵심은 얼굴, 그중에도 입 주변 미용이다. 입 주변 털이 동그랗고 예쁘게 깎여져야 강아지 특유의 귀여움을 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새롬이 미용할 때가 기억난다.
자꾸 움직이는 녀석 덕분에 가위질은 길을 잃고 털은 자꾸 삐뚤빼뚤해졌다.
다시 예쁘게 복구하기 위해 털을 다듬는다는 게 결국 걷잡을 수 없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려 아예 삭발을 해야 하는 참사도 종종 벌어졌다. 그때마다 귀염둥이 새롬이를 벌거벗은 임금견으로 만들어버려 아마 새롬이가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내게 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시행착오 끝에 유튜브 영상으로 애견 미용 방법도 배우고 어쨌거나 두세 달에 한 번씩 실전 미용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새 내실력도 일취월장해 수의사샘도 인정할 정도가 되었다. 사실 강아지 미용을 직접 해야겠다고 선뜻 덤빌 수 있었던 이유도 평생 미용일을 해왔던 '보통'이 아닌 엄마를 보고 자라 가위질이 익숙했기 때문일 게다.
이렇게 미용사의 숙련도는 최정점에 올라섰는데 문제는 우리 집 유일한 미용 고객인 '새롬'이가 협조가 안된다는 것이다.
새롬이는 이제 만사가 귀찮은지 미용 가위에 정말 '털끝 하나'만 스쳐도 연신 도리도리 고갯짓을 해댄다. 그 도리도리 고갯짓이 어찌나 빠른지 무협영화 속 액션 배우의 몸짓과 동시에 들리던 '휙휙' 소리만 안 날뿐 화장실 환풍기 바람을 가르는 듯하다. 가위질을 피하는 반사신경과 순발력을 보노라면 14살 아픈 노견이 아니라 쌩쌩하던 한창때 같다. 새롬이 전용 미용사인 나 역시 나이가 들면서 노안이 심해져 혹여나 미용기기에 새롬이가 다칠까 조심스럽다.
그 결과 요즘 새롬이는 미모를 포기한 채 털북숭이가 되었다.
하지만 점점 더워지는 날씨와 척추 디스크로 고생 중인 새롬이를 위해 긴 털을 마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특히 발바닥 털은 장판 바닥에 미끄러지기 쉬워 새롬이에게 위험하다.
일단 오늘은 퇴근하고 발바닥 털을, 내일은 눈 바로 밑 털을 깎아줄 생각이다.
눈이 큰 시츄답게 눈물이 많아 털이 늘 젖어 있어 자칫 피부가 짓무르기 쉽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이 정도로 미용을 거부하지 않았는데 사람이고 동물이고 나이가 들면 만사가 귀찮은가 보다.
또 무엇보다 눈이 실명하면서 두려움이 커진 탓인지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라 인지하면 더 예민하게 구는 것 같다. 아무래도 녀석도 엄마가 노안이 오고 관절이 삐그덕 대고 있다는 것을 아는 눈치다.
노견이 되었어도 엄마 눈에는 늘 아기 같은 새롬아!
산책을 나가도 엄마 손에 쥐어진 리드줄에 의지해 한 발 한 발 잘 나아가는 것처럼 미용도 14년 경력자인 엄마를 믿고 잠시만 참아줌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