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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May 20. 2024

 새롬이 탈출기

고마운 새롬 씨의 식탐

새롬이는 식탐이 유별나다.

보통 시츄들 식탐과 고집은 정평이 나있지만 새롬이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아침에 눈을 떠 인기척을 내면 새롬이가 가장 먼저 주방 앞 밥스폿인 매트로 향한다. 더 자고 싶지만 배꼽시계 알람에 반응하는 녀석 때문에 주말에도 늦잠은 사치다. 주방 매트 앞에서 아침마다 새롬이 밥을 준비하는데 사료통의 뚜껑을 열면 그 소리를 알아듣는지 아침밥을 재촉하듯 기 시작한다. 우렁차게 짖는 날은 새롬이 컨디션에 초록불이 확보되지만, 짖지 않는 날은 컨디션에 빨간불이 켜진 것으로 잘 살펴야 한다.


몸이 아픈 노견은 하루하루 컨디션 변화가 큰 편이다.

오늘 아침은 복부 단전 힘까지 끌어모은 듯 우렁차게 는 걸로 보아 컨디션 초록불이다. 행여 이웃에게 피해가 갈까 새롬이를 안아 들고 사료에 시저캔 한 스푼을 비벼 밥을 준비한다.


바닥에 놓인 밥그릇을 찾느라 킁킁대며 이리저리 방황하는 새롬이를 밥그릇 바로 앞까지 옮겨다 준다.

처음으로 새롬이 식사 시간을 측정해 보았다. 딱 10초다.

10초 동안 새롬이는 접시에 담긴 사료를 한알도 빠짐없이 입안에 넣어 씹지도 않은 채 바로 삼켜버리고 그릇 구석에 붙은 시저 조각까지 야무지게 핥아먹는다. 새롬이의 위장이 걱정되지만 매일 산책을 나가 시원하게 대변을 보는 녀석이기에 소화기능은 문제가 없어 다행이다.


4년 전 어처구니없게도 새롬이를 집에서 잃어버린 적이 있다.

당시 딸이 재수할 때라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피곤했던지 바로 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어나 보니 집안에서 새롬이가 보이지 않는다며 퇴근을 앞둔 내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온 것이다. 딸이 집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새롬이가 현관까지 꼬리를 흔들며 나와 반겨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새롬이가 집안 어디에도 안 보인다고 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표현을 이런 상황에 쓰는구나 싶었다. 상황을 따져 물을 새도 없이 쿵 내려앉은 심장을 겨우 붙들고 무슨 정신으로 운전해 집까지 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복도식 아파트 8층이던 집에 도착해 보니 정말로 새롬이는 집안에 없었고 딸은 너무 놀란 나머지 눈물범벅이 되어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집안에 얌전히 있던 새롬이가 땅으로 꺼졌나, 하늘로 솟았나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기가 막혔다.


대략 추정해 본다면 딸이 비몽사몽 한 채로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고, 집에 온 누나를 반기려 현관에 나간 새롬이가 산책이 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열린 틈새로 잽싸게 몸을 날려 빠져나간 것 같았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재빨리 정신을 수습하고 우선 아파트 관리실로 전화를 걸었다.


관리실 직원에게 반려견을 잃어버렸고 아파트 내 전체 가구에 새롬이 견상착의를 설명하는 방송을 해줄 수 있느냐 읍소했지만 강아지를 찾는 방송은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더 실랑이할 시간이 없었다. 딸에게 바로 1층으로 내려가 집 근처를 돌며 새롬이를 찾아보라고 한 후 아파트 꼭대기층부터 1층까지 계단과 복도를 샅샅이 뒤졌다.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치며 '새롬아 새롬아'를 외쳐댔지만 어디에서건 새롬이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새롬이와 동네 반경 1~2km까지 산책을 다녔던지라 녀석이 대체 어느 방향으로 향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새롬이는 산책을 나가면 무조건 직진해 앞서 달려 나가곤 했었다. 그랬던 녀석을 찾는 게 가능할 것 같지 않아 다시 발길을 돌려 인근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혹시 병원에 유기견으로 구조가 되어 들어온 아이가 있는지 확인했지만 없다고 했다. 다급히 연락처만 남기고 다시 집 근처를 돌며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날도 어두워지고 배도 고플 텐데.. 밤에 잘 때 엄마가 없으면 안 되는 녀석인데 대체 어디로 간 건지...

점점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급하게 나를 부른다. 새롬이를 찾았단다.


경비아저씨는 혼이 나가 미친 듯이 새롬이를 외치며 돌아다니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아파트 안을 수색하셨다고 한다. 새롬이가 발견된 장소는 등잔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우리 집 바로 옆동 화단이었고 식탐이 많던 녀석답게 화단에 놓인 고양이 사료를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고 한다.


평소 새롬이는 산책을 나가면 아파트 화단에 살고 있던 길고양이들을 쫓아다니곤 했었다.

고양이가 하악질을 해대도 눈치 없는 녀석은 고양이가 좋다며 계속 쫓아다녔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낯선 강아지를 피해 재빠르게 도망 다니는 고양이가 자기랑 놀아준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겁 없이 집을 탈출한 녀석은 아파트 8층 계단을 내려가 길고양이를 쫓아다니며 신나게 숨바꼭질 놀이를 하다가 슬슬 배가 고파지자 화단 깊숙이 놓여있던 고양이 사료를 발견하고  맛있게 먹고 있던 중에 발각된 것이었다.  


평화롭던 평일 저녁을 발칵 뒤집어 놓고서야 새롬이 탈출기는 장렬히 막을 내렸고 나는 경비아저씨께 여러 차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한 후 돌아온 탕아를 품에 안은 애끓는 부모의 심정으로 녀석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다친 곳은 없는지 살피는데 고양이 사료를 얼마나 먹었는지 녀석의 배가 볼록했다.

엄마와 누나가 얼마나 울며불며 찾아다녔는지 알 길이 없는 녀석은 모처럼 혼자만의 외출이 꽤 흥미진진하고 신이 났는지 집에 돌아오자 태평히 놀다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이 들었다.


새롬이는 유기견 신세가 될 뻔한 위기를 고양이 친구 덕에, 그리고 식탐 덕에 극적으로 넘기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곁에서 잘 지내주고 있다. 지금은 눈이 안 보여 길고양이 친구들과 인사할 수 없어 아쉽지만 고양이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는지 모르겠다.


새롬아. 네 식탐덕에 다시 너를 찾을 수 있어 고맙기도 하지만,  혹여 살이 찌면 허리가 아플까 싶어 간식을 마음껏 못주는 엄마의 마음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우리 새롬이 살아 있는 동안 더 아프지 말고 집 앞 꽃길을 산책할 수 있는 지금 만큼의 컨디션만 유지해 주어도 엄마는 너무 감사할 것 같아.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새롬아^^

사진 설명 : 고양이를 좋아하는 새롬이가 텔레비전에서 살쾡이가 나오자 격하게 반갑게 반응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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