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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Jun 14. 2024

부모에게 '행복 능력'을 물려받지 못한 분들에게

엄마와 나, 그리고 행복의 연결고리

아침에 눈을 뜨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부자리 거두고 벌떡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회사에 취업해 일을 했던 나는 대학 시절 4년, 임용공부했던 8개월을 제외하고는 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 농담 삼아 소처럼 일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다는 자조 섞인 푸념을 하기도 한다.


딸의 팔자는 엄마를 닮는다던데 엄마 역시 소띠답게 평생 일만 하며 살아왔다.

지금도 구청 노인 일자리 사업에 지원해 청소일을 다니신다. 말로는 집에서 놀면 몸만 더 아프니 일 다니며 사람들도 만나고 즐겁게 사는 게 건강하게 사는 길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아직도 일을 쉬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아침마다 운동삼아 걸어서 출근한다. 

자연을 보기 위해 일부러 울창한 숲과 농작물 텃밭으로 조성된 공원을 가로질러 간다. 6월 아침부터 본격적인 여름의 뜨거운 맛에 식겁하며 열심히 걷는다.

어제 아침도 공원 언덕길을 오르느라 다리에 힘을 빡 주고 자꾸만 헐떡이는 숨을 간신히 고르며 정시 출근을 목표로 걸음을 재촉하는데 문득 진심으로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씩씩이를 떠나보내고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지, 아니면 갱년기에 돌입해 호르몬의 균형이 무너지며 마음의 축대도 함께 무너진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직장 내 인간 스트레스 때문이지.. 여하튼 요즘 내 심사는 여러모로 편치 않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이제껏 살면서 진심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간절히 기원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았다. 대충 가족의 행복이 내 행복이라 여기며 가족의 행복을 위해 내 시간과 마음을 더 많이 할애하며 살아온 것 같다. 50살을 앞둔 지금, 건강수명을 75세로 본다면 내 두 다리로 건강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날은 겨우 25년 남짓 남은 셈이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 거기서 반 정도 더 변하면 아픈 몸을 이끌고 여기저기 병원 순례를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엄마는 보통의 엄마처럼 자녀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기보다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 속 자신을 붙잡고 처지를 한탄하며, 불행의 그늘에 머무르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외로운 마음을 사람들과 어울려 유흥을 즐기는 것으로 현실의 시간을 하염없이 소비했다. 또 주어진 삶을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아닌 부모덕이 부족해서, 형제복이 없어서, 인덕이 없어서 라며 외부 사람들이나 운명의 탓으로 돌렸다. 그렇게 자신의 책임보다 운명을 탓하는 쪽이 더 편했던 것 같다. 타고난 팔자를 탓하며 불행의 지분만 찾던 엄마는 행복을 일구어야 할 자신의 책임 지분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 역시 행복은 다른 차원의 세상에나 존재하는 나와 상관없는 가치라고 치부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과거나 지금의 불행에 골몰하며 의미를 찾고 더는 못된 선택으로 실수하지 않겠다는 일념하에 자신을 채찍질하며 다그쳤다. 또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는 이미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행복회로를 가동하기보다 엄마처럼 회피로 일관하는 삶을 살아왔다.


돌아보니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를 소환해 자꾸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도 불행 지분을 쌓는 일이며. 더 나아가 현재까지 과거에 저당 잡히는 꼴이다.




아마도 부모의 '행복 능력' 유전자 또한 그대로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것 같다.

이제라도 행복 능력을 자체 개발해 내 딸에게만은 불행을 피하는 법이 아닌 행복을 찾는 법을 전수해주고 싶다. 이미 부모에게 '행복 능력 '유전자를 물려받았거나, 보고 배웠다면 정말 행운인 셈이다.


내가 정의한 '행복 능력'이란 일상 속 행복 요소를 기막히게 발견하고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각을 감정의 공간으로 연결해 감탄과 감사로 은은한 기쁨의 향기를 피워낼 수 있는 능력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를 닮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많이 노력했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엄마의 삶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에 엄마처럼만 살지 않는다면 최소한 불행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내 의지가 얼마나 강했던지 무의식적 수준에서도 용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계기가 있었다.


엄마는 평소 옥수수와 감을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옥수수와 감을 30대까지도 특별한 이유 없이 먹지 않았다. 음식을 먹어봐야 호불호를 판단할 수 있을 텐데 왠지 모를 거부감에 입에 대지 않았고 그 이유조차 40대에 이르러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먹어본 감말랭이와 옥수수가 너무 맛있어서 한동안 건조기까지 사서 감말랭이를 만들어 먹었고 옥수수도 마찬가지로 홀릭하듯 먹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내가 지금껏 왜 멀리했을까 관조해 보니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마치 엄마를 닮아 엄마처럼 살 것 같다는 무의식적 두려움에 엄마가 좋아했던 음식까지 기피했다사실을 깨달았다.


엄마의 방황으로 인한 상처로 내 모든 힘을 집중해 엄마를 닮기를 거부하고 내 삶을 주체적이고 야무지게 꾸려 왔다고 자평했지만 행복 능력 유전자가 없는 걸로 보아 어쩔 수 없이 나도 엄마의 기질이나 모습을 닮아 있었다,




아침 출근을 도보로 하다 보니 자연히 출근길은 또 다른 명상의 시간이 되곤 한다.

출근길에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속 간절한 바람이 엄마와의 관계로까지 연결되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나는 딸이, 내 가족이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어떤 노력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데 정작 나의 행복을 위해 기원은커녕, 어떤 액션을 취하며 살아왔는지 되짚어 보았다.

나 자신조차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내 행복하나 책임지지 못하면서 누구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건지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캄캄한 밤하늘의 별빛이 온 세상을 수놓아 반짝이고, 한 겨울 따뜻한 햇살이 세상 모든 만물을 공평하게 비추어 주듯 행복도 온 우주와 자연이 우리 모두에게 공짜로 선물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그 행복을 우리는  '행복 능력'을 활용해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 발견만 하면 된다.


지나간 불행에 대해 의미를 찾고 해석하는 게 사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불행을 내 안에 가둔 채 곱씹기보다 오히려 잘 흘려보내는 게 다가올 미래를 더 현명하게 맞이하는 일이다.


이제 엄마와 나는 함께 늙어간다.

엄마도 나도 불행의 씨줄은 충분히 엮었으니 앞으로는 행복의 날줄을 찾아 남은 삶을 멋지게 엮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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