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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Jun 20. 2024

엄마는 스탠바이형 가수!  흥 많은 흥 여사

엄마와 나, 그리고 민요의 연결고리

엄마는 지금도 노인정에서 자칭 타칭 민요가수로 통한다.


엄마가 오랜 시간 깊이 빠졌던 나름 건전한 취미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경기민요'였다. 

어느 순간부터 민요는 엄마에게 유일하고도 강력한 삶의 탈출구가 되어 주었고 나 역시 건강에 해로운 술보다 민요에 빠져있는 엄마가 싫지 않았다.


엄마는 틈만 나면 혼자 신명 나게 장구 장단을 치며 목청껏 민요를 불렀는데 일생동안 쌓인 한을 박박 긁어모아 구성진 노랫가락에 몽땅 실어 내보내는 듯 보였다. 그렇게 몇십 년 동안 민요를 부르며 평생에 걸쳐 누적된 삶의 고단함과 시름을 걷어내고 또 걷어냈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툇마루에 앉아 장구 장단을 치며 노래하는 엄마의 모습을 일상다반사로 지켜봤다.

엄마의 소리는 전공자에게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못해 정교한 기교는 못 부려도 청이 어찌나 크고 우렁찬지 어린 시절 내 귀에는 온 집안이 들썩들썩 떠나갈 듯했다.


어릴 때는 민요가 엄마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혀 헤아리지 못했기에 민요 소리만 들리면 또 시작이구나 하며 마냥 시끄럽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마음 잡고 시험공부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에헤~~ 에헤헤헤헤야~ 어어라~~ 방아로구나~~~' 엄마의 민요소리가 들려온다. 그럴 때면 하기 싫은 공부 한답시고 억지로 앉아있느라 좀이 쑤시는 통에 기회는 이때다 싶어 한껏 성질을 부리며 시끄럽다고 버럭 소리를 질러대곤 했다.


엄마는 한동안 인근에서 민요 대회가 열릴 때마다 신청서를 접수하고 무대에 섰다.

민요 대회에 나간 엄마를 응원하기 위해 몇 차례 대회 장소까지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꼭 대회 우승을 목적으로 한다기보다 무대에 서는 자체를 좋아했는데 그런 대회 무대가 아니면 엄마가 민요를 부르며 무대에 설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대회를 목표로 연습하면 실력도 일취월장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꾸준히 대회를 찾아다닌 결과 상도 몇 개 탔다.


엄마는 진짜 요새 아이들 말로 '관종끼'가 얼마나 충만한지 모른다.

친구들과 놀러라도 가는 날이면 장구와 장구채는 필수품이다. 무거워도 낑낑대며 기어코 들고 간다.

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본인의 장기자랑 타임을 만들고, 일동 차렷을 유도한 후 민요를 메들리로 뽑아 재낀다.


(혹시.... 주변에 이런 분을 엄마로 두신 분 계시면 손 한번 들어보실래요?)


한 번은 엄마 친구들을 따라 계곡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장구도 없어서 내심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만 허를 찔리고 말았다.

엄마에게 장구는 그저 흥을 거들 뿐이고 진정한 예술인은 목소리 하나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더운 여름 시원한 계곡에서 기분 좋게 술 한잔 마시며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엄마는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난데없이 민요 한 곡조 부르겠다고 통보했다. 친구들의 응답을 기다릴 것도 없이 손으로 장단을 맞추며 또 목청 높여 민요를 불렀다. 다행히 친구분들은 이미 엄마의 스타일을 알고 있는터라 손뼉을 치며 흥겹게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그날도 엄마의 목소리는 계곡 물소리를 뚫고 산 정상까지 울려 퍼졌을 거다.

주변에서 피크닉 중이던 다른 분들은 이런 엄마의 모습이 신기한지 계속 쳐다봤다.

사실 민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엄마의 소리는 소음이나 진배없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신명 난 엄마와 달리 좌불안석, 연신 주변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


한편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볼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은 둘째 치고, 이런 엄마가 진짜 진심 신기하다.


생각해 봄 엄마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티브이에 나와 연예인을 하는 거다.


그런데 연예인 가수들도 반주 없이는 노래 안 하려고 하지 않나?


여하튼 엄마는 반주건 뭐건 no matter! no  problem!

76세 울 엄마는 지금도 준비된 스탠바이형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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