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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Jul 05. 2024

어린시절 엄마의 부재가 내게 남긴 것

엄마와 나, 그리고 상처의 연결고리

지헤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풍파를 직접 경험하며 배우기보다 눈과 귀를 활짝 열어 타인의 서사를 통해 배우고 풍파 가운데 있더라도 한발 찍 떨어져 지켜볼 수 있는 대범함의 여유를 갖추고 싶다. 지혜가 없으면 특히 부정적인 감정은 내 안에서 증폭되기 쉽다.


어린 시절 지혜로운 어른들 속에 자랐다면 행동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배움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그런 환경에서 자랐다면 정말 복이다.) 나의 경우처럼 그렇지 않은 어른들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다면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아주 어려서부터 체득하게 된다.


나름의 고통의 시간을 거쳐 알게 된 진실이 있다.

사람은 극악의 환경에 수동적으로 무력하게 당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란 사실이다.

나쁜 어른을 가까운 가족으로 만났다 해도 최소한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겠다며 반면교사 삼아 나를 정진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하지만 굳이 그들을 스승이라 칭하고 싶지는 않다.)

결국 삶의 위기나 주변 상황을 해석하는   자신이다.

내 감정의 문지기인 나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내게 일방적으로 상처를 줄 수 없다.


어릴 때 내 주변은 유흥에 빠진 방황하는 어른들로 포진되어 있었다.

자녀는 부모에게 보호를 받아야 하고, 부모는 우선적으로 자녀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부모의 방황으로 보호막이 헐거워지면 아이들은 위험천만한 허허벌판에 맨몸으로 서 있는 신세로 전락한다.

비가 오면 비를 맞아야 하고 거센 눈발이 날리면 추위에 떨며 눈발을 맞아야 하는 운명을 떠안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불행의 기억을 치유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만 한다.


엄마의 방황으로 내가 만난 세상은 억울했고, 분했고, 차가웠고, 따가웠고 시리고 아팠다. 

우리는 딸만 셋에 나는 둘째였다.

부재중인 엄마로 인해 나보다 한 살 위로 맏이였던 언니는 9살부터 살림을 도맡았고(믿기 힘들겠지만.....) 엄마를 향한 거친 분노를 동생이었던 내게 풀었다. 나는 언니의 화풀이 샌드백으로 거친 폭력에 늘 시달렸다.

언니 또한 피해자였기에 어린 시절의 일을 문제 삼고 싶지는 않지만 엄마의 방황에 더해 부재중인 엄마의 틈을 타 언니의 폭력까지 견뎌야 했던 나는 정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나는 점점 더 예민한 기질의 아이로 성장했다.

지옥 같은 현실을 잊기 위해 공상이 펼쳐놓은 은밀하고도 안전한 나만의 가상 세계를 만들어 의식을 몰아갔다.  


최근 검사한 MMPI 성격검사에서도 내 성격의 특성을 딱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는 과한 긍정성, 또 하나는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 두 성격 또한 어린 시절부터 살아남기 위해, 생존을 위해 선택한 성격일테다.

긍정적으로 생각을 전환하지 않았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자각했다면 나는 아마 숨조차 쉬지 못했을 테다.


그나마 중학교에 들어가 따뜻한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을 모델링 삼아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중학교 때 만난 담임선생님들의 눈빛과 미소는 한없이 따뜻하고 좋았다.(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께 받은 은혜를 저도 보건실에서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있어요!)

그렇게 선생님을 통해 어른에게 처음 느껴보는 긍정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마치 추운 겨울 호호 불어주는 작은 입김으로도 꽁꽁 언 손을 녹일 수 있듯이 당시 만났던 선생님들은 내게 한겨울 입김 같은 존재였다. 


어린 시절 한동안 잠자리에 들기가 두려울 정도로 악몽을 자주 꾸었다.

한번은 꿈 속에서 광활한 벌판 위에 혼자 서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몇 개의 무덤만 보일 뿐이다. 

어린 시절 나를 보호하고 지켜줄 어른이 없는 것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그런 꿈으로 형상화된 게 아닐까 싶다.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내 마음 속은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이렇듯 척박한 환경에서 나를 지배했던 감정은 분노였다.

연탄재 발로 차이듯 차여 본 사람은 이 분노의 감정을 알 것이다.

모든 감정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무협 영화 속 주인공이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 원한을 품고 분노의 감정을 키우며 그것을 발판 삼아 복수할 날만 기다리며 삶의 에너지를 응축시키듯 분노의 감정이 내뿜는 에너지는 실로 엄청나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30대에 이르기까지 나를 키운 건 8할의 분노였다. 

분노란 감정은 역경 속에서도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도록 부스터 역할을 하는 막강한 힘이 있다.

누구보다 멋지고 당당한 사람이 되어 그 누구도 나를 아프게 하지 못하도록 지켜내고 싶었다.


결국 분노 에너지를 열정으로 바꾸어 미친 듯이 열심히 달렸고 그 결과 적당히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빛은 필연적으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오랜 시간 나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내 성장의 동력이 되어 주고 내 에너지의 밑천이 되어 준 분노로 인해 나는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이제 이만 하면 아무도 나를 무시하지 않겠지 하며 내면의 평화를 찾고자 분노를 멀리했지만 녀석은 마치 서운하다는 듯 모습을 바꿔 우울이란 감정으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목적을 잃은 분노에너지는 결국 내 안에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아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렇게 한바탕 우울이 휘젓고 떠난 지금, 나는 똑똑히 알게 되었다.

열심히 산 것과 잘 산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열심히는 살았지만 잘 살지는 못했기에 우울했다. 사실을 40대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되었다.


내가 배우고 배워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인생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삶의 목적을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닌 잘 사는 것으로 전면 수정한 것이다.

이제는 분노에너지로 앞만 보고 달리기보다 사랑 에너지로 내 마음을 데우고 주변에도 마음의 온기를 나누어 주며 정말로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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